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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착한 육식이 가능한가?
윤리적 육식주의에 대해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이기훈 춘천교육대 시민교육사업단 전임연구원
   
  △ 사진출처 : Pixabay  

   바야흐로 채식의 시대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채식의 중요성과 육식의 위험성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채식주의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사회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채식은 한 개인의 취향 이상의 무언가를 내포한다. 사람들에게 채식주의는 그저 채식을 즐긴다거나 채식으로 식사를 하는 사람을 의미하기보다는 육식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일반 식문화와 대치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일 수도 있고, 일부의 채식주의자들이 보여온 과격한 운동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채식의 시대라고 이야기했지만 진정한 채식의 시대는 아직 멀었다. 오랜 시간 채식주의가 하나의 식문화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를 기대했던 입장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에게 육식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인류사에서 육식은 생존을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으며, 그만큼 인간에게 육식이란 식문화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간혹 종교적 또는 사상적 조류에 의해 자연을 추종하고 흠모하는 형식으로 육식이 거부되기는 했으나, 긴 인류의 역사에서 이는 아주 부분적이고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육식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매우 진부하고 판에 박힌 것으로, 오랜 시간 인류에게 육식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대체 단백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게 된 지금까지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영양적인 부분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먹는 행위를 통해 생을 영위하는 것 이상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 육식이 쾌락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인류는 전례 없는 다양한 음식의 풍요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음식 자체가 갖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된 것 같다. 통신 기술과 물류 산업의 발전으로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문턱이 낮아짐으로 인해 쉽게 선택 가능하고 강하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음식만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처럼 우리가 고기를 소비하는 형태는 이러한 변화된 식습관에 기인한다. 빠른 시간 안에 우리에게 많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음식은 기름기가 가득한 지방질의 육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육류 소비의 폭증으로 인해 사람들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이내 공장식 농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도축 방식을 개발해냈다. 이 공장식 농장이라는 곳은 명칭만 농장일 뿐 그 현실이 참혹하기 그지없다. 이제 더 이상 동물 농장을 드넓은 초원을 평화롭게 노니는 동물들의 아름다운 이미지와 연결 짓는 것은 무리이다. 이러한 공장식 농장의 문제는 비단 환경 및 동물 보호 단체에서만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진 문제이기에, 많은 일반인들이 역시 이러한 공장식 농장의 현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에게 공급되는 가공육의 대부분이 이러한 공장식 농장의 산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까? 또는 만약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들의 육식 습관을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전 세계의 채식주의 열풍은 동물해방 운동과 함께 오랜 시간 계속되었고, 분명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의 증대를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다. 하지만 육식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함께 진행되지 않는다면 극적인 변화는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채식은 육식을 포기하더라고 추구할 만한 것인가?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채식을 개인의 건강 따위의 문제와 결부 짓고 싶지는 않다. 채식주의자가 육식주의자보다 건강하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고,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건강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도덕적인 옳고 그름, 또는 좋음과 나쁨의 판단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공장식 농장 운영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공장식 농장을 통한 육류 생산은 굉장히 비효율인 구조로 유지된다.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서 사료로 이용되는 엄청난 양의 식량, 동물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공급되는 과도한 수자원, 농장 운영을 위해서 필요 이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 집약적으로 모여 있는 동물들의 분뇨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 등 현대의 공장식 농장이 가져온 폐해는 정말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공장식 농장의 탄생은 앞서 밝혔듯이 우리의 지나친 육류 소비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의 채식은 육식보다 더 좋은 식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다양한 폐해에 대한 언급 없이 공장식 농장에서 희생되고 있는 동물들만 생각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은 철저하게 잘못된 것이다. 육식문화가 갖는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무생물을 가공한 공산품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물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비록 동물들의 고통이 인간의 고통과 동등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흔히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애호하고 사랑하려고 애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보다 냉정한 관점에서 동물들을 고통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지역차별과 같이 종차별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평등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그리고 평등이 사실에 관한 단언이 아닌 도덕적 이념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적 유용성 따위를 논하지 않고 두 존재를 동등하게 평등하다고 당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평등이란 실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닌 어떻게 처우할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동물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평등하다. 평등하게 대우받아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고통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평등하게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평등한 고려가 충분히 확보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채식은 육식보다 도덕적으로 좋은 식문화라고 또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채식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가하는 질문에는 회의적이다. 많은 사회운동가와 학자들은 피나는 노력을 통해 채식의 대중화를 꿈꿨으나 육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채식주의 운동가들의 영리하지 못한 시위 방식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비주류문화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자극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채식과 육식의 한 치의 양보 없는 이러한 긴장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은 윤리적 육식을 적극 권장하는 것이다. 채식을 위한 육식이라는 말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현 상태에서 이 방법만이 동물의 복지를 가장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사람들이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육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도덕적 인간의 가장 큰 동인(動因)은 행복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행위하고, 고통을 주는 방향을 기피한다. 동물의 복지 향상이라는 목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수정할 수 있는 행복한 신념이 될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보다 많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은 그저 고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은 완전한 채식주의자의 불편함을 목격했거나 육식 문화로 얻는 쾌락에 너무나도 만족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보다 완화된 방식을 제안해야만 한다. 그것이 윤리적 육식이다.

   윤리적 육식은 고기를 섭취하는 과정에 제약을 건다는 점에서 절제된 육식 또는 부분 채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행위의 결과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가장 우선시 되는 제약은 고통을 양산하는 공정을 통해 생산된 동물의 고기나 계란, 또는 우유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 철학자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을 통해 이러한 윤리적 육식의 실현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답한바 있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동물 복지 인증 제품이 유통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비록 그 수가 현저히 적고,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애쓴다면 충분히 실천 가능한 수준이다.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마저 외면한다면 결국 세상을 바꿀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에는 다음이 없다. 언제나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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