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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여성-되기’와 페미니즘
자율적 근대 주체의 환각에서 벗어나기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김은주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흔히 도덕적 행위를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한 실천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행위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행위자가 실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니체의 비판을 수용하며, ‘자율성’에 기반한 근대 주체 도덕을 넘어 새로운 윤리적 기획을 마련한다.

   들뢰즈의 윤리적 출발점은 ‘왜 인간은 복종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한다. 칸트는 자기 자신이 내린 명령에 따라 법을 세우는 입법자 주체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그 법을 지키면서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으나 법을 만든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자기 규율적 주체를 실천 이성의 이상이자 도덕적 주체의 표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러한 주체를 지탱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 복종이라는 자기 입법이 실은 예속의 형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에 착목한다. 들뢰즈가 참고한 푸코 역시도,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장치를 통과하여 주체가 종속화의 과정으로 생산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들뢰즈는 사유하는 ‘코기토=나=개인=실천하는 주체’라는 근대 주체의 도식과 주체화의 생산을 들여다보며, 근대 주체의 환각에 벗어나는 새로운 주체화를 ‘되기(devenir/becoming)’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되기’는 무엇보다도 ‘타자-되기’이며, ‘소수자-되기’로서, 이 모든 ‘-되기’의 출발점은 ‘여성-되기’에 있다.

   되기에서 ‘타자-되기’는 동일한 나와 다른 비동일자 타자가 되자는 의미가 아니다. 타자-되기의 의미는 우선 사유하는 자아 코기토로 수렴하기에서 벗어나, ‘신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바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되기는 신체의 변용과 차이의 생성을 새로운 습관의 체계를 만드는 윤리적인 것으로 제안한다. 다시 말해 ‘되기’는 신체들의 변용을 통과해 부정적 정동(affect)을 긍정적 정동으로 변화하여 신체의 변용 능력을 극대화하는 ‘좋은’ 관계와 결합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되기가 ‘인간'으로 표상되는 다수적 지배의 보편적 정상성을 비판하고 해체하기를 동반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되기는 페미니즘과 어떻게 만나는가? 가타리와 함께 쓴 『앙띠 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는 근대 주체를 유지, 재생산하는 부계 혈통과 상징 자본 승계를 반복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이로부터 탈주할 것을 강하게 촉구한 바 있다. 페미니즘 역시 대문자 인간이 실은 남성의 다른 이름에 다를 바 없음을 환기하며, 오랫동안 타자의 자리에 머물러 온 여성의 주체화를 모색해왔다. 이 점에서 들뢰즈의 되기 개념과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은 동일성에 근거한 인간 중심주의와 맥락 초월적인 보편타당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조우한다. 그뿐 아니라, 되기 개념은 페미니즘 주체화로서 여성-되기를 실행하면서 실천적 의의가 분명해진다.

   하지만, 들뢰즈의 ‘여성-되기’ 논의는 집합적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꽤 오랜 시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는 되기 개념이 신체의 변용과 여성 신체를 설명하는 바에 유의미성과 ‘성적 차이(sexual difference)’를 강조하며 ‘여성-되기’의 의의를 평가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또한 새로운 윤리적 전회를 시도하는 되기를 통해 페미니즘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다양한 사회운동과 보다 폭넓게 연대하는 확장된 정치 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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