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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n번방 이후의 성윤리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김은희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성윤리를 제시할 때 많은 이론가는 성의 가치부터 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흔히 거론되는 성의 가치는 생명잉태, 사랑, 쾌락이다. 각각으로부터 보수주의, 중도주의, 자유주의 성윤리가 도출된다. 혹은 이 세 가지 가치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아름다운 성’의 윤리를 외칠 수도 있다. 이런 윤리에서 볼 때 자신의 성에 있어 생명잉태, 사랑, 쾌락의 가치 모두를 다 내려놓은 이의 성은 무슨 가치가 있을까? 가치 없는 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윤리적 보호장치는 무엇이란 말인가? n번방 이후에 우리가 기대어야 할 성윤리는 무엇인가?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생명잉태도 사랑도 쾌락도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성을 활용하던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들의 경우 누군가의 성적 상대가 되어주면 ‘스폰’(금전 지원)을 받을 거라는 성적 거래에 대한 요구에 응하다가, 혹은 어떤 이들의 경우 자신의 나체 사진을 서로 공유하는 ‘일탈’을 즐기는 계정이 해킹되면서 협박을 받아 성착취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들은 그런 요구에 응했거나 그런 ‘일탈’을 즐겼던 자신에게 가해질 세상의 비난과 경멸을 예상하였고 협박과 강제라는 뻔한 범죄를 당하면서도 세상밖에 구원을 향한 손을 뻗칠 수 없었다.

  이들에게 손을 뻗친 것은 ‘아름다운 성’의 윤리가 아니라 ‘정의’라고 평가하고 싶다. 정의의 어법은 피해자의 성이 과연 보호할 가치가 있었는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떤 한 인격의 자율성과 권리가 손상된 국면에 초점을 둔다. 세상 사람들 눈에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왔던 성행태가 아름답지 않아도 정의의 어법은 피해자를 위해 조사하고 싸운다. 많은 남녀가 가해자에게 공분하였고 이들의 처벌강화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중 누군가는 ‘가해자 처벌은 당연하지만 피해자도 잘한 건 없어’라는 피해자 멸시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듯  누군가는 법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가해자 처벌이 당위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름답지 않은’ 성행태를 보인 피해자에 대한 도덕적 불승인을 확인하고야 만다. 도덕은 법적 정의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며. 그리고 피해자에게 당연히 법적 책임은 없지만 도덕적 책임은 있다며.

  ‘아름다운 성’의 윤리는 성에 특정 가치를 부여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친다. 당연히 그 가치가 무엇일까에 대해 현대인들은 저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이 생각을 통일시키기 위해 ‘아름다운 성’의 윤리는 성의 본질적 가치를 확정하는 것을 중시한다. 보수주의가 당연시한 성의 가치는 정조와 순결이었다. 그런 사회에서 강간범이 피해자에게 앗아간 것은 ‘정조’였다. 그래서 정조란 가치를 스스로 내던진 이들의 성을 보호하는 윤리는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 떠오른 성의 가치는 사랑과 쾌락인데 스스로 이것을 내던진 이들에게 현대 사회의 중도주의 혹은 쾌락주의 성윤리도 역시 도덕적 불승인을 나타내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방식의 성윤리들에는 대상의 성질에서 당위를 끌어내려는 시도가 공통으로 있다. ‘본래 성은 이러한 것이다’로부터 ‘그러니 성을 이렇게 다루어라’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그 대상의 성질이나 가치는 그 자체로 참인가? 우리 인간은 그저 참된 성질을 잘 식별해서 실행에 옮기는 의지의 담지자라는 의미에서 윤리적 존재인가? 본래 세상의 참된 모습이 정해져 있고 인간이 이를 알아보고 진리를 알게 되었다는 생각은 칸트에 의해 깨졌다. 칸트는 세계의 본질을 중심으로 했던 형이상학으로부터 우리 인간 인식능력을 중심으로 하는 형이상학으로 전회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했고 도덕철학에서도 어떤 질서 안에 박혀 있는 도덕법칙의 식별에 연연하기보다 인간의 실천이성의 능력을 도덕법칙의 구성원리로 놓는 전환을 했다.

  우리의 성윤리의 초점도 바뀌어야 한다. 초점은 참되고 아름다운 성의 규명보다는 인격들 간 존중과 공존의 성격에 대한 규명으로 옮겨져야 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성에 대한 외경을 표하느라, ‘아름답지’ 못하다고 여겨진 성행태를 보인 인격을 멸시하는 성윤리를 벗어나야 한다. 성의 가치를 떠받드는 성윤리보다는 인격에 대한 존중이 중심이 되는 성윤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타인을 성폭행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성 자체가 가치 있어서라기보다 그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해서이다. 혹자는 성의 가치와 인격의 가치는 별도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때 성의 가치는 그 성을 지닌 바로 그 인격이 부여한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이때 인격은 소위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은밀하게 채색되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가치는 흔히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 것들이었고 ‘아름답지’ 않다고 추정된 가치는 억압되어 온 것들이었다.

  새로운 성윤리에서 존중받아야 할 우리 인격의 핵심은 자율성이다. 자율성 강조에 대해 어떤 여성주의자들은 회의적일 수도 있다. 남녀 성별시스템의 불평등, 억압, 착취 구조에 초점을 두지 않고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순진한 발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자율성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잃지 않음을 의미한다. n번방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자율성, 즉 통제력을 빼앗았다. 여성주의자와 나와의 차이는 가해자를 좀 더 구조 전체로 확장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일 뿐, 피해자가 자기 성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한다는 의미의 자율성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피해자들 역시 자기 통제력을 잃고 일탈적 행태를 해왔으니 이들이 스스로를 통제하는 자율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무엇이 진정한 자신인가에 대해서는 타인이 함부로 미리 단정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함부로 ‘당신들이 제정신 아니게(진정한 자신이 아닌 상태가 되어 통제력을 잃고) 놀았으니 당신들도 윤리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n번방 사건 가해자의 섹슈얼리티도 성적 자율성으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것마저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자율성 주장은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다. 자율성을 파괴할 자율성을 인정하게 되니까 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새로이 강조될 성적 자율성의 성윤리는 적어도 자율성을 파괴할 자율성은 인정하지 않는, 즉 자율성들 간의 공존의 원리를 말해줄 원리와 결합해야 한다. 그 원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의론이다. 정의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동등한 공존의 기초 원리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성’의 가치에 기반한 성적 행동의 방향성들은 각 개인의 가치관은 되겠지만 우리 사회의 성윤리가 되지는 못한다. 아름다운 성에 대한 저마다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이 다양한 성들의 공존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사회윤리적 과제이고 이 과제는 성의 가치부여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n번방 사건 이후 성윤리는 ‘아름다운 성’의 윤리가 아니라 ‘정의론으로서의 성윤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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