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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길은 생각보다 많다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익명 마감 노동자

   2019년 3월,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다. 애초에 박사에 뜻이 없었던 나는 석사 학위를 따고 취직할지, 아니면 수료만 하고 취직할지 결정해야 했다. 교수님과 동료들은 학위를 따고 취직하라고 조언했다. 학위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나으니까. 취직에 실패하면 다시 학교로 돌아와 박사과정을 밟으면 되니까. 나는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컸다. 나는 당시 대학원을 다니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조교 장학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끊기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우리 집은 나의 대학원 생활을 지원해줄 만큼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리고 서른 가까운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까지 논문을 쓰고 싶진 않았다.

   “그럼 왜 대학원에 들어왔냐?”는 질문이 따라올 수 있겠다. 나는 애초에 무슨 학위를 따려고 대학원에 온 게 아니다. 그저 영화가 좋았고, 영화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려면 대학원에 와야 하는지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지금은 확실히 안다. 영화 글쓰기를 배우고 싶으면, 대학원이 아니라 글쓰기와 관련한 문화 센터 같은 곳에 다니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대학원은 영화를 학문적인 틀로 사유하는 곳이지 영화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학원 생활이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나는 대학원에서 많은 걸 배웠다. 영화 한 편을 컷(cut) 단위로 잘라 분석하는 신기한(?) 작업을 하고, 매 학기 흥미 있는 영화에 관해 상당한 분량의 소논문을 썼다. 그 과정에서 좋아하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나는 영화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이제야 깨달은 거지만, 이 모든 건 굳이 ‘학교’라는 공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대학원생 때는 잘 읽지도 않았던 영화 이론서를 지금 훨씬 더 많이 읽고 있다.

   여하튼 그 정도의 생각을 안고 대학원 2년을 마쳤다. 그래서 지금은 무얼 하느냐고? 나는 현재 어느 잡지사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두 달 뒤면 입사한 지 1년이 된다. 가끔 외부 원고도 쓰고, 내 이름을 걸고 영화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영화 코너에 매주 고정 게스트로 참여하게 됐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 잘난 석사 학위 없이도 잘 살고 있어요”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자신이 선택한 학문에 확고한 소명과 철학이 있는 사람, 논문 쓰기가 적성에 맞는 사람, 내가 원하는 직업이 석·박사 학위를 필요로 하는 직군에 속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원을 다니는 게 맞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큰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학위에 욕심을 낼 필요가 있을까. 아직도 내 주변에는 참 다양한 이유로 대학원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어떤 작가를 인터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에 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그저 해 보고 아니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포기도 도전이다. 대학원을 졸업하지 않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인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꽤 견고하고, 길은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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