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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공간이 바꾸는 일상
제주, 세 번의 밤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김선아 건축가

   친구들과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평생 한 가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김치볶음밥이라고 답했고, 누군가는 칼국수이고 또 누군가는 만두라고 답했다. 각기 다른 음식을 골랐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며 살 수는 없다. 평생은커녕 일주일도 힘들 테다.

   사람이 한 가지 음식을 끊임없이 먹으면 금세 질리듯, 같은 공간에 계속 머무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공간에서 우리는 질리고 물리고 지루해진다. 출퇴근길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대신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이동하고, 해가 뜨고 지는 매일의 하늘은 거의 올려다보지 않는다.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처럼 일상과 뚝 떨어진 다른 장소에 나 자신을 던져 놓고 싶은 마음이 내 여행의 이유가 된다. 여행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끊임없이 내 주위 공간을 변화시키는 일이 아닌가. 일상에 질려 버리지 않고 계속 흥미를 잃지 않은 채 살아내기 위해서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공간의 환기가 필요하다. 제주도로 떠난 여행에서 친구와 나는 세 번의 밤 동안 세 곳의 숙소에서 머물렀다. 하룻밤 머물고, 아침이면 짐을 꾸려 다음 숙소로 떠났다. 위치도, 시설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가격까지 천차만별인 숙소들이었다.

   
  △ 첫 번째 숙소 내 카페  

   첫 번째 숙소는 단지로 구성된 건물들 속 더블룸이었는데 저층부에 카페와 펍, 편집숍, 세탁실 등 공용공간이 훌륭히 갖춰진 곳이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서 나와 단지 내 펍으로 가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엔 카페에 가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구경할 겸 들린 단지 내 편집숍에서는 예정에 없던 쇼핑을 했다. 제주에서 바로 입을 티셔츠를 사고, 신발도 샀다. 입을 때마다 제주가 생각날 것이다.

   
  △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를 가진 숙소  

   바다가 보이는 방에 하루 묵었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바람에 바다를 향한 테라스가 있는 숙소를 두 번째 곳으로 정했다. 현무암 돌담으로 구획된 구불구불한 길 사이를 지나 숙소에 도착해 친구와 나 둘 다 동시에 환호했다. 노을이 붉게 물들이고 있는 바다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고, 저녁엔 파도치는 소리를 배경으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 독립된 건물로 이뤄져 있는 마지막 숙소  

  세 곳의 숙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마지막 숙소는 굳이 이름 붙이자면 캠핑 스테이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넓은 대지에 독립된 건물을 지어 한 채씩 머물도록 하는 곳이었는데, 좁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그보다 더 적당한 크기일 수 없을 정도로 알맞았다.

   방문을 열자 봄을 주제로 선곡된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는 내부로 들어가자 향수 브랜드와 콜라보 해서 만든 숙소만의 향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웰컴티마저 받았으니, 말 그대로 공감각적인 환영이었다. 두 개의 방에 두 개의 화장실, 모든 것이 갖춰진 주방과 거실, 그리고 거실에서 폴딩도어로 연결된 작은 마당에서 내내 우리는 숙소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에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작은 마당의 테이블에서 저녁을 먹으며 와인 따개와 와인 잔을 비롯해 준비되어 있던 각종 식기를 사용했다. 밤이 깊으면서 어둠이 내리자 마당을 비추는 외부 조명을 켰고, 얇은 비가 흩날리기 시작하자 테이블로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있는 어닝을 쳤다. 저녁을 먹은 후엔 거실 식탁에 앉아 세리프TV로 영화를 보며 그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물건이 그 자리에 있음을 경험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여기 또 오자. 다음에도 또 오자.” 하룻밤 동안 이 말을 우린 얼마나 많이 반복했을까.

   음식을 구성하는 맛이 오로지 달고 쓰고 시고 쓴 맛이 아니듯이 공간을 만드는 요소들도 오로지 바닥과 벽과 천장이라고 할 수 없다. 공간은 구획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이 더 큰 인상을 좌우한다. 주변엔 어떤 시설이 있는지, 창밖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내부를 어떤 빛이 밝히고 있는지, 하룻밤 머무는 데에 불편하지 않도록 가구가 배치되어 있는지, 공간을 채우고 있는 소리와 향은 어떤지.

   각자 특색이 다른 숙소에 머물며 3박 4일 동안 우리는 공간에 따라 다른 밤과 아침을 보냈다. 바닷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깨고, 잠옷 바람으로 밤 산책을 나서고, 요리해 먹고, 미래에 우리가 살 각자의 집에 대해서 상상하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서울에서는 없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공간에는 일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출근을 시작했다. 압축적으로 경험한 제주의 공간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며칠을 보내고 있다. 각 숙소에서 보냈던 세 번의 밤과, 우리가 처음으로 올랐던 오름의 푸르름과, 경이로웠던 용머리 해안의 거친 감촉과, 붉게 밟히는 땅을 가진 비자림의 향이 내 몸 어딘가에 묻어있다. 그 기억으로 다시 일상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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