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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커피와 담배, 그리고 술
나의 범주를 넘어서기
[212호] 2020년 05월 25일 (월) 김태환 편집장
   
  △ <커피와 담배> 스틸 (사진출처 : United Artists)  

   <커피와 담배>(2003, 짐 자무쉬)의 에피소드 중 한 편인 ‘캘리포니아 어딘가(SOMEWHERE IN CALIFORNIA)’에는 금연에 관한 흥미로운 담화가 등장한다. 짐이 25년간 피웠던 담배를 끊고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하자, 톰 역시 이에 동조하며 금연하지 못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곧이어 톰은 금연의 매력을 역설한다. “담배를 끊어서 가장 좋은 점은 다시 피울 수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끊었으니까.” 짐은 이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금세 수긍하며 함께 담배를 피운다.

   이처럼 <커피와 담배>는 수많은 인간군상에 대한 농담 같은 영화인 동시에, 말 그대로 ‘커피와 담배’가 주인공인 영화다. 따라서 곳곳에 커피와 담배의 존재론적 의미가 노출된다. 커피와 담배는 시간을 텅 빈 공간처럼 만들거나, 어떤 대상에게 몰두할 계기를 제공하는 도구인 동시에 그 자체로 내 삶을 주도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커피는 피로와 권태감, 나른함을 덜어주고 내 눈 앞의 일을 직시하게 한다. 담배는 내게 깊은 호흡을 유도하고 이에 안정감이라는 보상을 제공한다.

   사실 나는 담배를 주기적으로 피우지는 않는다. 다만 술에 취할 때 아주 가끔 담배를 들이킨다. 평소에는 담뱃잎 타는 냄새에 코를 막고 얼굴을 찌푸리지만 이때만큼은 무척 구수하고 달게 느껴진다. 그리고 담배연기가 술기운과 함께 머리를 기분 좋게 두드리며 나를 몽롱한 상태로 끌고 간다. 커피는 이와 조금 다르다. 과제와 논문 쓰기로 심신이 지쳐갈 때, 독한 베트남 커피를 한 잔 들이킨다. 호흡이 빨라지고 흥분되면서 눈앞의 것들이 선명해진다.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모크샤』에서 “단지 타락해서 인간이 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다. 알코올은 가난하고 문맹인인 이들을 문학과 심포니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인도한다”라며 술을 예찬한다. 커피와 담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다시 말해 같은 공간일지라도, 관계망과 배치가 바뀐다. 이를 통해 또 다른 나가 출현한다. 이 때의 나는 이전의 범주를 넘어선다.

   나의 범주를 넘어서기. 이것은 영원히 공부하는 삶을 꿈꾸는 내게 무척 중요한 화두다. 수많은 활자들이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간접적 경험을 제공하지만, 커피와 담배 그리고 술 또한 그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그들은 친구이자 동료이다. 그리고 이들을 기점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술집에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고 담배를 나눠 피우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보면 바닥을 친다. 우리가 무엇을 어디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바닥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 바닥에서 사람들과 뒹굴 때 너무나 행복하다. 웃음과 실수가 연발하고, 상대의 감정을 내 것인 것 마냥 함께 호흡한다. 그리고 또 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다른 자리에서 할 수 없는 진지한 말들을 서로에게 건넨다. 이런 일들을 맨 정신에 할 수는 없는 것이냐고? 할 수야 있겠지만, 둘의 결이 같을 수 없다. 커피와 담배, 술 그리고 사람이 주는 귀중한 경험들을 여태껏 나는 다른 곳에서 만나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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