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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 <기생충>, 트럼프, 아카데미상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211호] 2020년 04월 13일 (월) 정영권 영화평론가
   
  △ 사진출처 : AMPAS(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작년 <기생충>(2019)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엔 이제 그럴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굳이 한·중·일 3국을 비교할 필연적 이유는 없지만, 일본은 이미 1954년에 <지옥문 地獄門>(1953. 이때는 황금종려상이 생기기 이전 그랑프리)이, 중국은 1993년에 <패왕별희 霸王別姬>(1993)가 같은 상을 받았다. 국제영화제가 국가대항의 올림픽은 아니지만 국가의 위상을 떠나 생각할 수 없고, 각 영화제의 최고상은 한 감독의 최고 작품에 주기보다는 그/그녀가 국제영화제에서 쌓아 올린 경력에 주는 것이기에 봉준호 감독의 수상은 응당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런데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수상?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봉준호 자신도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각본상에는 멋진 수상소감을 준비했지만, 감독상 수상 자리에선 통역이 진행되는 동안 머리를 싸매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심하는 눈치였다. 마침내 원로 여배우 제인 폰다가 “패러사이트(Parasite)!”를 작품상으로 호명했을 땐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고,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실감했다. 그건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말마따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즉 어떤 ‘사태’가 일어났음을 짐작게 했다. 그리고 이 사태는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 그리고 아카데미상과 미국 영화계의 변화를 측정하게 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물론, 우리는 <기생충>이 갖고 있는 작품 내적인 우수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이 영화가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문제를 다루면서도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어떤 ‘보편성’에 도달했다는 것을 부정할 이유도 없다. 세계의 부는 더 증식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여기에 오스카 레이스를 향한 CJ ENM의 공격적 마케팅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핵심은 트럼프 이후의 미국과 아카데미상의 관계에 있다. 트럼프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1939), <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1950) 같은 고전 걸작을 거론하며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우리를 무역에서 때려놓고는 빌어먹을 영화로 아카데미를 가져갔다.”고 악담을 퍼부었다. 영화상을 아무 관계없는 무역과 교환물로 보는 태도는 우습지만 이런 수사학이 미국 우선주의를 설파하는 그의 포퓰리즘적 무기가 되는 것은 웃을 일이 아니다. 그것이 먹히고 있으며, 그가 만약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 효능성은 배가될 것이다.

  그러면 아카데미는 어떤가? 사실, 전통적으로 아카데미상은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제일주의’, ‘미국 우선주의’와 상충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아카데미 작품상은 주로 스펙터클 대작이나 온건한 미국 중산층의 가치, 보편적 휴머니즘에 호소하는 영화를 사랑했다. 2000년대 초중반의 수상작들, <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 <뷰티풀 마인드 A Beautiful Mind>(2001),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2004)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트럼프도 좋아했을 영화들이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러한 흐름이 감소하고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앵글로 색슨이 아닌 외국 출신 감독들(특히 멕시코)의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나친 환원론일 수 있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버드맨 Birdman>(2014), <레버넌트 The Revenant>(2015)), 기예르모 델 토로(<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2017)), 알폰소 쿠아론(<로마 Roma>(2018)) 등 소위 ‘쓰리 아미고스(three amigos)’가 작품상, 감독상을 받은 시기는 트럼프 집권 전후의 시기와 겹쳐진다. 특히 감독상 수상작 <로마>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외국어 영화였다. 이에 더해 2017년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 Moonlight>(2016)는 흑인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독립영화에 가까운 영화다. 최근 연기상에서도 비(非)백인 연기자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보헤미안 랩소디 Bohemian Rhapsody>(2018)의 라미 말렉은 아랍계 미국인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남녀 조연상으로 가면 흑인 배우들이 거의 매년 수상을 이어나가고 있다(2017년 <문라이트>의 마허샬라 알리, <펜스 Fences>의 비올라 데이비스, 2019년 <그린 북 Green Book>의 마허샬라 알리,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If Beale Street Could Talk>의 레지나 킹).

  물론 이러한 흐름은 소위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영화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자유와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영화인들은 기질적으로 보수주의적인 공화당보다는 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을 더 선호하고 연예계는 다른 분야보다 소수 인종·민족에게 열려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특히 트럼프 집권 이후 멕시코 국경 폐쇄, 난민 배척 등으로 한층 더 가속화하고 있다. 브래드 피트처럼 대놓고 공화당 대통령의 화를 돋우는 것은 이제 아무 일도 아니다. 아마도 아시아 영화 최초의 작품상, 외국어 영화 최초의 작품상 수상작으로서 <기생충>은 이렇듯 아카데미가 시대적 변화의 요청에 민감해졌다는 인식에 부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트럼프에게 제대로 한방 먹였던 것 같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What the hell was that all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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