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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서평] 모더니티의 통로 혹은 그 이상의 사각지대
Matthew Frank, Making Minorities History: Population Transfer in Twentieth-Century Europe,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211호] 2020년 04월 13일 (월) 윤재민 문학평론가, 조선대 강사
   
  △ 사진출처 : Amazon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복도는 그다지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우리는 복도라는 공간에 삶의 많은 부분을 의탁하며 생활한다. 거주지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큐브(cube) 형태의 반듯한 현대인들의 사적 세계는 필연적으로 복도를 통해 세상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복도는 사적세계와 공적세계의 구획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각지대이다.

  로저 루커스트의 『복도: 모더니티의 통로』는 기존의 공간 기호학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바 없던 사각지대인 복도를 모더니티의 핵심공간으로 주목하는 흥미로운 저서이다. 저자에 따르면, 복도는 서양 건축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의미와 기능을 구획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각지대이다. 복도 자체를 공간적으로 생성하기 위한 건축은 드물다. 건축가들은 자신이 상정한 ‘의미 있는’ 공간 구획의 잔여인 복도를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양식을 고안했다. 이를테면 전근대 시대 궁궐이나 신전 같이 평범한 이들에게 압도적인 장엄함과 신비로움을 선사해야 하는 건축물들에서 복도는 압도적인 크기 혹은 미로 형태같이 왕이나 신의 공간에 다가가는 것의 ‘어려움’을 의미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때의 복도란, 인간의 것이라기보단 피안의 공간에 접속하기 위한 일종의 시련이나 수난이라는 기호적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19세기 부르주아 모더니티 사회에서 복도는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부르주아 중산층 가정주택 설계가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구획되는 가운데, 복도는 사유화된 ‘빈 공간’으로 인간에게 점령된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연결하는 부르주아의 애매한 공간으로서 복도는 사적인 취미를 전시하는 작은 갤러리로 기능한다. 복도는 더 이상 사각지대가 아니다. 거주자 혹은 건물 소유자의 공적자아와 사적 욕망 혹은 이상을 세계와 연결하는 유토피아적 기획의 전시장이다. 거주자와 소유자가 분명한 건물의 복도는 사적 친밀함과 공적 유대의 역할을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공간에서 실현하는 ‘사회적인’ 공간이다. 허나 버려졌거나 소재가 불분명한 현대 건축물의 복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모더니티의 질곡은 수많은 부르주아 소유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었다. 폐허 건축물의 복도는 더 이상 부르주아의 유토피아적 이상의 공간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원소유자가 건물을 다른 이에게 넘기거나 용처가 바뀌면 구획된 공간의 원래 의미도 일신한다. 의미의 일신은 복도에선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애초부터 명확한 기능이나 의미 외부의 애매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건축물에 깃든 온갖 흔적을 그대로 보전하는 공간이 된다. 복도는 분명 누군가의 사적소유물의 일부지만 그것 이상의 적체된 유령 같은 과거의 존재들이 기거하는 사각지대다. 복도에 홀로 선 인간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일 터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 순간 현대 복도는 물리적인 차원으로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과 존재들과 연결되는 디스토피아 혹은 헤테로토피아로 일신한다.

  이 책은 현대 건축의 산물로서 복도가 유토피아적 기획을 넘어 헤테로·디스토피아로 일신하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문화적 재현양식을 폭넓게 조망한다. 고딕소설은 물론이고 <샤이닝>의 ‘세발자전거 트래킹 씬’ 등의 서스펜스 영화, 드라마 <웨스트 윙>, 심지어 <레지던트 이블> 같은 호러 게임의 사례까지 망라한다. 공간 기호학뿐만 아니라 현대 서스펜스 장르 컨벤션에 관심 있는 이들까지 사로잡을, 폭이 넓은 일급저서라 감히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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