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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잔인한 봄과 들풀의 위로
늪이 된 사진가
[211호] 2020년 04월 13일 (월) 정봉채 사진가
   
  △ 사진전 ‘우포 지독한 끌림’ 중  

   나의 별명은 ‘늪이 된 사진가’이다. 학창 시절과 고등학교 교사 생활 모두 부산에 있었지만, 마음은 지금 살고 있는 우포가 고향이고 집이다. 교직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프로 사진가의 길을 결심하며 무작정 우포로 왔다. 이곳의 사계절을 카메라에 담으며 지낸 지 어느새 20년이다. 누구나 우연의 형태로 운명과 조우하는데, 사진가가 된 것도, 늪이 된 사진가가 된 것도 이제 와 생각하니 운명이다. 학창 시절 친구를 따라 카메라를 메고 찾았던 우포가 이렇게 내 삶에 특별한 곳이 되리라고는 당시에 알지 못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만 들고 우포로 왔을 때 그 무모함을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그때의 감정에 충실한 선택이었다. 학생들과 지내는 교직도 보람 있었지만, 그보다 더 사진이 좋았다. 우포에서 삼각대를 놓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에 서서 하늘을 볼 때면 참 좋았다.

   인생의 진로를 바꾼 후, 물론 이리 저리 부침을 겪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에 외로움도 컸다. 늪가의 폐가에서 기거하며 아무도 없는 새벽의 어둠에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홀로 있을 때면 공포가 엄습하기도 했다. 오가는 허기진 야생동물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일도 많았다. 늪의 습성상 모기, 습기, 열기도 견뎌야 했고, 오래 기다려 포착해야 하는 자연 사진이니 한없이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늪으로 갔다. 특히 가라앉는 감정이 나를 엄습할 때면 우포 늪가에 가서 자연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사진들을 정리했다. 그러면 다시 상처에서 새살이 오르듯 힘이 생겼다.

   
  △ 우포 늪이 보여주는 자연의 숨은 속살  

   우포에 머물며 20년째 자연 사진만 찍고 있으니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쁜 세상에서 한가로이 풍경 사진을 찍고 있으니 신선놀음 부럽다는 말도 들었고, 매일, 매월, 매년 똑같은 것을 그것도 한 장소에서 20년이나 찍느냐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났다. 그럴 때면 대부분 빙긋 웃고 넘겼다. 설명을 하거나 소리 높여 나의 가치관을 토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사진에 대한 열정 하나로 버티며, 내 사진이 추구하는 바를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장황하게 내 사진과 가치관을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서서히 보이지 않는 힘으로 단련되었다. 소박하고 거친 시간이 축적될수록 나는 오히려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대단한 인격 수양을 한 것이 아니라 우포의 자연이 매일 나를 정화했다. 사진을 찍으러 나갔지만 실은 자연 안에서 매일 치유되어 돌아온 시간들이었다.

   사진가로서 늘 스스로 던진 질문은 ‘나는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였다. 남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노력도 했다. 그 결과 사진가로 명예로운 길을 걸어왔다. 많은 수상과 전시, 열정적인 제자들을 가르치는 보람도 있었고, 유수 갤러리를 통해 해외 아트페어에서 찬사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초빙교수로 미국의 사진과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기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에 우포가 체화될수록, 유명한 사진가가 되고 싶은 마음보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질서로 회귀하려는 나를 보았다. 일시적인 명예와 성공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사진을 통해 우포의 자연과 아름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사진이 무엇을 향해 가는지 의미도 분명해졌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숨겨둔 촬영 포인트, 기막힌 셔터 찬스, 최고의 장비가 아니었다. 겸손하고 한없이 작은 사진가가 되는 것, 그럴수록 자연은 숨은 속살을 보여준다는 깨달음이었다. 우포의 자연 앞에서 겸손해 질수록 나는 매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오늘도 매일 한 번도 보지 못한 신비함을 향해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 힘이 내 사진에 담기고, 그 사진을 보는 이에게 전해져 그의 마음이 나와 같이 정화되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한결같이 추구해온 내 사진의 의미이다. 복잡한 세상에 보다 현실 참여적이고 개혁적인 사진이 필요하다며, 자연 사진은 현실 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고립되어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이며 그 자연을 사진으로 담아 세상을 정화하는 작업이 자연 사진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재앙이 인간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다. 텅 빈 거리, 그러나 공백의 자리에 어김없이 봄은 온다. 그동안 무심한 눈으로 지나쳤던 풍경들이 귀하게 보이고 들린다. 무심히 꺾고 놀다가 길바닥 어딘가 던지곤 했던 작은 들풀이 거꾸로 인간을 치유하는 봄이다. 그러니 이 역설과 모순 앞에서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이는 건강하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니 마음이 건강하고, 자연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마시며 시간을 품은 땅을 밟으니 몸이 건강하다. 답답할 때면, 가라앉을 때면,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향기를 따라 산책하자. 자연에 답이 있다.

   
  △ 우포 늪의 뱃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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