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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낯선 도시의 영화관들
미국 서부의 영화관을 다녀와서
[211호] 2020년 04월 13일 (월) 김민범 편집위원

 

   
  △ 미국 LA에 있는 할리우드 사인 (사진 : 김민범 편집위원)  

   먼 도시의 영화관이 항상 궁금하다. 여행을 떠나 홀로 밥을 먹는 일이 지겹고, 길 잃는 일에 지칠 때면 지도에서 영화관을 찾아 들어간다. 영화관에는 비슷하게 적적한 사람들이 있었고, 같은 영화를 고른 이들과 잠시 함께 모여 있는 일은 때때로 위로가 됐다. 한 달간의 미국 여행에서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영화관에 들렸다.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위해, 유명 영화관을 구경하기 위해 혹은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매번 각기 다른 이유로 극장으로 향했다.

   시애틀에서 들린 영화관은 시애틀국제영화제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이었다. 시애틀국제영화제는 선댄스 영화제, 뉴욕 영화제와 함께 독립영화, 제3 세계 영화를 중점으로 소개하는 영화제다. 시애틀국제영화제는 행사 개최뿐만 아니라 운영하는 영화관 세 곳을 중심으로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 이집트 컨셉으로 잡은 영화관은 ‘파라오 카페’라는 매점을 운영하고, 오시리스 상, 아누비스 상, 오벨리스크 모형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단차가 높지 않은 극장에서 새해 첫 날 사람들과 함께 샤프디 형제의 신작 <언컷 젬스>(2019)를 보며 허망함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 중 물가가 비쌌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도시 외곽에서 지냈다. 숙소는 사방을 둘러봐도 비슷한 집들이 모여있는 커다란 베드타운이었다. 다음 도시로 향하기 전 영화를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개봉을 한참 앞둔 <1917>(2019)이 영화관에 걸려있었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외진 길을 걸어 영화관에 도착했다. 매표원은 보자마자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메고 있는 가방이 영화관 규정 사이즈보다 크다고 했다. 나는 한참 뒤에 상영하는 영화를 예매하고, 숙소에 가방을 두고 와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가방을 보여줘야 했고, 커다란 가방은 애초에 출입불가한 공간이 많았다. 영화를 보며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 자꾸 가방을 움켜쥐었다.

   LA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할리우드 사인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이름을 떨친 당대의 스타들의 손도장이 극장으로 향하는 길에 깔려 있었고, 아카데미가 열리는 코닥 극장과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시네마테크가 같은 거리에 몰려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할리우드 사인은 좀처럼 가까워 질 줄을 몰랐고, ‘할리우드’ 라는 감각은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 있는 기분이었다. 엉뚱하게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국 브랜드의 극장에서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하는 <나쁜 녀석들: 포에버>(2020)를 봤다. 극장에서 간간히 들리는 한국어와 한글 자막이 반가웠다. 극장을 나서며 매일 충무로를 지나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음을 떠올렸다.

   어쩌면 영화는 이제 영화관에서만 시작하지 않는다. 한 편의 영화가 개봉해서 관객을 만나고, 천천히 TV나 VOD로 이동하는 일은 고루하게 느껴진다. 극장에서 승리하지 못한 영화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성장한 거대 자본들은 OTT 서비스를 만들어 구독한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 해낸다. 그에 발맞춰 홈시어팅 시스템이 발전하여 각자의 방은 작은 상영관이 되고 있다. 일상에 빠르게 밀착하고 있는 유튜브에는 매일 증식하듯 영상들이 올라와 극장에 가는 발걸음을 조금 더 머뭇거리게 만든다. 영화는 보다 사적인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출발한다.

   영화관은 이러한 경합을 오래 겪어왔다.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시스템이 등장했을 때마다 위기라는 단어를 마주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영화관들은 사라졌고, 다른 극장은 이름을 바꿔 뭉치게 됐다. 앞으로 극장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다. 그러나 가족, 친구, 연인 혹은 익명의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앉아 잠시 스크린을 함께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특별하게 느껴진다. 수다스러운 광고와 분주한 대화가 오가던 영화관이 암전과 함께 고요해지면 본 적 없는 세계가 시작된다. 그곳에는 나란히 맺힌 시선들이 있고, 느슨하게 기댄 어깨가 있으며 언제든 웃거나 울 준비가 된 입술이 있다. 극장을 떠나며 함께 온 사람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다정하고, 홀로 남아 엔딩크레딧을 바라보며 잠시 동료가 되었던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은 매번 쓸쓸해서 황홀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극장들이 셀 수 없고 만나지 못한 영화들이 많으며 아직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덕분에 나는 낯선 도시의 영화관을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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