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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칼럼]문학과 자기검열의 시대
[209호] 2019년 09월 23일 (월) 박혜경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문학평론가

   문학이 더 이상 시대의 중심이나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은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식상할 정도로 자명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매체 환경의 변화에서 찾는 것 또한 식상한 말이긴 마찬가지다. 최근 유튜브 인구의 폭발적 증가는 문학의 하향세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되어버렸음을 입증하는 현상인 듯도 하다. 그러나 문학의 이러한 위상변화는 역으로 문학이 지닌 또 다른 역량과 성찰적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밖으로 뻗어나가는 힘이 사그라들 때 비로소 문학이 자신이 누렸던 힘이 아닌, 자신의 맨얼굴과 온전히 대면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생각해보면 100년 남짓 되는 한국 근현대문학의 역사에서 문학이 가장 힘이 있었던 시대는 문학이 시대나 정치와 가장 밀착된 관계 속에 있을 때였다. 이것은 문학이 단순히 시대 정치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학 스스로도 매우 정치적이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근대문학은 시대가 요구하는 첨예한 정치적 요구와 함께 출현했고 스스로를 정치적 무기로 만듦으로써 문학이 시대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과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광수의 시대가 그랬고 민중문학의 시대가 그랬다.

   우리는 문학의 이러한 정치화를 문학이 지닌 권력에의 욕망과 내면의 문제라는 두 가지 국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문학이 문학 특유의 담론양식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문학이 지닌 정치성의 본질은 문학이 던지는 메시지보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담론의 차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계몽 담론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것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문학과 독자의 관계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 설정하는 계몽 특유의 서열구도는 문학이 시대적 어젠다를 선도하는 힘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몽의 정치적 효과는 문학이 오랫동안 도덕적 상징권력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했다.

   문제는 문학이 추구했던 계몽적 도덕성이 역설적으로 문학 자체를 억압해왔다는 점에 있다. 서구의 근대문학이 고백의 양식에서 시작됐고 고백이란 인간이 지닌 내면의 발견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을 「문학이란 何오」에서 이광수 또한 ‘情’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함으로써 문학과 내면성의 관계에 주목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이러한 정, 혹은 내면의 영역을 매우 조형적이고 외면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문학이 보여주었던 내면의 세계는 대부분 시대적 내면, 도덕적 내면이었고, 집단의 삶을 투영하는 방식으로서의 내면이었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은 개인의 고유한 삶의 공간인 내면에서 정작 개인이 부재했던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박준은 한때 촉망받는 소설가였지만, 그가 정작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문학인들로부터 외면 받고 실패한 소설가로 사라지게 된다. 이 작품은 시대뿐만 아니라 문학 또한 작가에게 끊임없이 획일적인 자기진술을 강요했던 시대를 보여준다. 강제된 자기진술에의 요구는 외적 권력에 자신을 끼워맞추려는 개인의 자기검열을 부른다. 개인 내면의 목소리를 받아주지 않는 세계에서 남는 것은 결국 개인이 사라진 개인의 서사다. 그 점에서 소설가로서의 박준의 실패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롤랑 바르트는 “담론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죄의식을 유발하는 담론은 모두 권력담론”이라고 했다. 이 죄의식이 개인의 자기검열과 통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 개인을 지우고 나를 집단의 요구에 맞추려는 죄의식과 자기검열은 우리 삶 도처에 만연해 있다. 하물며 권력과 맞서는 문학조차 스스로 죄의식을 유발하는 담론이 되려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데리다는 “문학은 제도적이면서 야생적인 공간”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제도 자체를 일시중지시키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제도적 공간”이 문학이라면 우리 문학에는 제도화된 자기검열을 넘어서는 더 많은 야생성이, 더 많은 제도의 일시중지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개인들의 내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들리지 않는가? 공적인 언어 밑에서 짓눌린 채 들끓고 있는, 저 무수한 사적인 내면의 목소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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