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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신문, 안녕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송석주 편집장

   2014년 11월, 나는 당시 다니고 있던 대학 학보사에 칼럼을 투고했다. 계기는 간명하다. 2014년이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졌고, 신해철은 정말 노래가 되었다. 그것들이 세상에 아로새긴 어떤 ‘징후’들을 글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심을 다해 썼다. 며칠 후 신문사로부터 내가 쓴 글이 신문에 실리게 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상상했다. 누군가 신문을 펼쳐 이 기사 저 기사를 살피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지. 동의할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 그 과정을 머릿속에 그리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마 그때부터 기자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엔 영화 전문 기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학부 마지막 학기에 영화 교양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김혜리나 허문영의 글을 파고들지 않았다면, 당시 마음에 품었던 사람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대학원에 들어와 한가하게 영화이론 따위를 전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했다. 사사로운 선택은 거의 대부분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 된다. 그렇게 나는 대개 남들이 여가 시간에 취미로 즐기는 영화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사유하는 작업을 2년가량 했다.

   대학원 생활은 쉽지 않았다. 몇 번 그만둘 뻔한 적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버텼다. 여러 이유 중 단 하나만 꼽으라면 대학원신문 때문(덕분)이다. 대학원신문은 대학원 생활의 가장 큰 구심점이자 위안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매 학기 신문을 발행해야했기 때문에 대학원을 그만두지 못했다. 가끔은 신문사 일을 하려고 대학원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취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목소리를 글과 사진으로 옮겼다. 좋은 필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미진한 실력이지만 영화 코너에 정기적으로 글을 썼다. 신문을 만드는 일은 고단하지만 그만큼 짜릿하다. 고행(苦行)을 겪은 사람들의 흔한 말처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문을 만들면서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동료 편집위원들은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 엄마 불쌍하다고 울었더니 같이 울어주었다. 편집 회의나 조판 작업이 끝나면 밤새도록 술을 먹었다. 영양가 없는 주제로 난상토론을 펼치다 “가방끈 긴 것들이랑 같이 못 놀겠다”는 말을 서로에게 퍼부었다. 소설을 전공했던 한 동료는 등단하면 당선 소감에 내 이름을 써주기로 했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등단하지 못했다. 내 푸념을 들어주느라 집중을 못한 탓이 클 것이다. 편집장이 되고 나서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허덕였다. 편집위원들에겐 짐짓 괜찮은 척을 했지만 혼자 끙끙 앓았던 적이 많았다. 믿고 따라와 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번 208호를 끝으로 나는 대학원신문을 떠난다. 2년 전 첫 신문이 발행됐을 때 “이거 굉장히 뿌듯한데?”라는 나의 반응에 당시 편집장은 “독자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편집장이 되고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신문이 나오자마자 책상 앞에 선채로 오탈자는 없는지, 편집 실수는 없는지, 사진은 제대로 나왔는지 살폈던 그의 행동이 괜한 노파심이 아니었다는 걸. 아니나 다를까 이번 호로 입봉한 편집위원은 첫 조판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내게 “뭔가 좀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참 걱정스러웠는데 말이다.

   여전히 인쇄매체는 위기고, 활자는 영상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대학원신문 역시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선배들이 꾸렸던 지면을 살펴보면 그 위기의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있다. 지면도, 발행 횟수도, 인원도 줄어갔다. 하지만 그 숱한 위기 가운데서도 대학원신문은 살아남았다. 원우들이 대학원신문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대학원신문의 앞날은 한층 밝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원신문이 힘든 대학원 생활을 해나가는 원우들에게 찰나적으로나마 따뜻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내 ‘학교 인생’은 학보사로 시작해 학보사로 끝나는 것 같다. 대학 시절 썼던 그 치기 어린 글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글쓰기에 몰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하고 싶어서, 곁에 아무도 없어서 글을 썼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적어야 사는 ‘적자생존’ 인생이 되어버렸지만. 신문사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글쓰기에 진력을 다했던 순간들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고맙다. 그저 고마운 일이다. 향후 내 자리를 채우게 될 후임자에게도 대학원신문이 고마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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