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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로마>와 카메라 존재론
흐르는 삶, 존재하는 카메라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송석주 편집장
   
  △ 사진출처 : <로마> 포스터  

   <로마>의 물성(物性)을 동사로 표현한다면 ‘흐르다’일 것이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흐른다. 인물들은 쉼 없이 움직이고, 카메라는 패닝(panning, 수평 찍기)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의 삶을 유영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화면의 소리들은 프레임 안으로 파도치듯 밀려들어온다. 이 같은 영화의 액체적 리듬감은 <로마>가 역사와 개인,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하나의 율격이기도 하다.

   주인공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그러한 영화의 액체성을 체화하고 있는 인물이다. 멕시코의 한 중산층 가정인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의 집에서 식모로 일하는 그녀가 바닥을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갈 때 물은 그 주위에 고여 있거나, 아래로 떨어지거나, 바깥으로 흘러넘친다. 말하자면 <로마>에서 액체는 인물의 심리를 물화시키는 시각적 표현 기법이면서 동시에 클레오가 딛고 있는 현실의 은유이기도 하다.

   그 현실은 클레오라는 한 개인의 비극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멕시코의 비극이 맞물리면서 더욱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스크린 밖으로 되울려 나온다. 영화는 그것을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데, 사건의 비극성에 비해 카메라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둔하다. 영화는 상당 부분 고정된 카메라의 좌우 패닝 쇼트로 찍혀있고, 인물의 심리를 보다 명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점 쇼트나 클로즈업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즉 카메라는 무엇을 ‘찍고’ 있다기보다 그저 그 공간에 ‘존재’한다. 이는 <로마>의 주요한 스타일적 기법이기도 하다.

   
  △ 사진출처 : <로마> 스틸  

   그것을 가장 극적이고도 명료하게 보여주는 예가 클레오가 바다에 빠진 아이들을 구출하는 장면이다. 왼쪽으로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의 속도는 음악으로 치자면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에 가깝고, 오른쪽으로 발을 내딛는 클레오와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패닝의 속도는 아다지오(Adagio, 느리게)와 유사하다. 이 두 가지의 이질적인 빠르기가 한 쇼트에서 충돌하듯 연주될 때, 극적 긴장은 배가 된다. 이처럼 쇼트를 분절하거나 앵글을 조작하지 않고도 긴박한 몽타주를 구현해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실로 경외로운 영화적 순간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을 구출한 후 클레오가 소피아의 가족들과 엉겨 붙어 유산(流産)의 아픔을 토해내며 울먹일 때, 카메라는 패닝의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그들을(그들 곁에) 포착(존재)한다. 후경에서 작렬하는 빛이 그 순간을 위무한다. 자신이 원치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했던 딸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지는 생의 아이러니 앞에서 카메라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로마>에서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에는 자꾸만 삶으로 틈입하는 절망과 기어이 그것을 막아내는 희망이 병존하고 있다. 그렇게 영화는 사람과 사람으로 조각된 연대와 위로의 부도탑을 쌓아 올리며 삶과 죽음의 이항대립을 형형히 재현한다.

   영화의 마지막, 이제 클레오는 흐르지 않고 올라간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제자리에서 앙각(low angle, 올려 찍기)으로 포착한다. 클레오가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 이후에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물에 비친 하늘(오프닝 시퀀스)이 아닌 오롯한 하늘 그 자체를. <로마>의 엔딩이 황홀하면서도 헛헛한 이유는, 때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말이 아니다. 이따금씩 영화라는 예술이 현실을 계몽시키는 일종의 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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