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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비평]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젠더 이분법의 불완전함과 젠더 오해 가능성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가쇼이 소설가, 『가발』 저자
   
 

△ 사진출처 : pixabay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2012)에서 로렌스는 애인 프레드에게 자신이 실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임을 고백한다. 프레드는 충격에 빠진다. 이원 젠더 체계에서 한 인간은 ‘여자 혹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평생 그에 상응하는 젠더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여성은 남성에게, 남성은 여성에게 성적(이거나 로맨틱한) 끌림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통상 상대방의 정체성을 묻지 않은 채 사랑을 고백하고 연애에 돌입한다.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얼굴, 체형, 목소리, 행동, 외모를 꾸미는 방식 등을 토대로 성별을 추측하는 것이다. 프레드도 로렌스를 처음 만났을 때 로렌스가 남성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머리가 짧고 수염자국이 있으며 굵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남성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프레드의 판단은 틀렸다.

   이번에는 영화 <크라잉 게임>(1992)을 살펴보자. 퍼거스는 딜을 여성으로 여기고 사랑에 빠진다. 딜은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는 성기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 여성이다. 퍼거스는 딜의 외모와 옷차림을 보고 그녀의 몸도 ‘여자 몸’일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잠자리에서 딜이 옷을 벗자 메스꺼움을 느낀다.

   젠더 이분법에 의하면 특정한 젠더에 속하는 몇 가지 특성으로 나머지 특성을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르는 사람과 통화할 때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방의 머리 길이나, 체형, 옷차림 등을 대략적으로 상상한다. 여성이라는 직선 위에 나열된 특성이 있고, 남성이라는 직선 위에 나열된 특성이 있다. 그리고 두 직선은 평행하며 결코 만나거나 교차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의 젠더 개념은 현실을 온전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틀은 성소수자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층적인 면모를 포괄하기 어렵다. 여성성과 남성성 중에 한 쪽만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둘 사이 어디쯤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젠더 이분법은 인간을 인식하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지향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특정 젠더에 대한 방향성을 전제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가 상대방의 젠더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면, 성적지향과 무관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성/남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은 무의미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젠더 체계를 기반으로 자신의 자아를 찾고 표현하고 특정한 젠더(표현)에 끌리며 사랑을 나눈다. 또한 집단을 형성해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존재하며, 규범적인 정체성에 자기 존재를 의탁하는 사람도 그것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존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젠더규범 이상이다.

   사회학자 김현경은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정체성 서사의 최종 편집권은 당사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나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말의 누락과 왜곡도 없이 자신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의 설명보다 당사자의 설명이 본질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알고, 상대방이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아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예의를 갖춰 묻거나 상대방의 말을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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