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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문학예술과 현실의 관계
들뢰즈와 (포스트)미메시스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오길영 충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 사진출처 : pixabay

 

 1. 미메시스는 무엇인가. 그 어원은 그리스어인 mimeisthai 이고 명사형이 mimesis 이다. 미메시스는 ‘모방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방하는가. 어떻게 모방하는가. 혹은 왜 모방하는가. 이런 물음이 제기된다. 첫째, 모방의 일차 목적은 자연과 관계된다. 인간이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모방한다. 생존의 확률은 인간이 자연과 더 많이 닮아갈수록, 더 많이 자연의 힘을 파악할수록 높아진다. 둘째, 인류가 진화하면서 발생하게 된 국가와 사회, 혹은 문명이라는 제2의 자연은 더 복잡한 미메시스 능력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문학예술이 다루는 인간과 세계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으면 문학예술은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문학이 다루는 인간과 세계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분석해야 한다.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레닌/알튀세르)이 관건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세계의 “구체적 분석”은 무엇인가. 문학예술은 물질세계(자연)와 인간세계(사회)에서 작동하는 힘(force)을 포착하려 한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들뢰즈 예술론은 무엇보다 힘의 예술론이다. 문학예술의 대상은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 잠재성의 힘이다. 세 가지 힘이 문제다. 첫째, 물질의 힘. 현대물리학이 밝히듯이 물질의 최소단위는 계속해서 다시 규정된다. 물질과 힘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힘의 역학에 따라 물질성은 변화한다. 범박하게 말하면 힘이 곧 물질이다. 둘째, 인간의 힘. 굳어진 개념의 체계에서 힘은 통상 권력(power)으로만 협소하게 이해된다. 권력은 눈에 가시적인 힘이다. 문학은 그런 힘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학예술은 죽은 활력인 권력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힘, 권력을 구성하고 권력을 해체하는 활력으로서의 힘을 포획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둔다. 셋째, 사회의 힘. 문학예술은 사회적 힘의 관계, 헤게모니적 관계를 포착하려고 한다.

 2. 문학예술은 어떻게 힘을 대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대상과 표상과의 일치를 강조하는 미메시스 예술론이 근대미학의 답변이다. 미메시스 예술론은 리얼리티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리얼리티를 미적 주체가 온전하게 재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근대 유물론 미학은 반영론 미학이다. 근대미학의 전제에 제기되는 질문들은 이렇다. 재현된다고 믿는 리얼리티의 참됨을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어떤 근거로 리얼리티의 객관성을 확언하는가? 더 근본적으로 그 리얼리티는 무엇인가? 들뢰즈가 제기하는 포스트 미메시스적 사유는 이런 질문들을 천착한다. 들뢰즈 예술론은 미적 인식과 대상의 존재의 미를 다시 묻는다. 들뢰즈 예술론에서는 문학예술 자체의 존재론도 문제가 되지만 그것이 마주하는 대상 혹은 현실세계의 존재론과도 관계된다. 문학예술은 현실과 마주한다. 여기서 ‘마주한다’는 말이 인식론적 측면을 가리킨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마주한다는 표현도 옳지 않다. 예술은 이미 세계 안에 존재한다. 세계는 예술을 이미 한 부분으로 품는다. 예술은세계와 그 세계가 품고 있는 삶의 존재론적 층위를 공유한다.

 이렇게 들뢰즈는 세계를 일원론으로 파악한다. 예술과 세계는 존재론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분리되지 않는다. 들뢰즈에게 세계는 시간적, 공간적 측면에서 독특하다. 세계는 현실화된 형상들을 창조하는 힘(에너지)의 시공간이다. 그런데 이 세계는 주체가 특정한 지각의 구조에 갇혀 있을 때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체는 감각되는 세계, 현실성의 세계만을 세계의 전부라고 오인한다. 하지만 들뢰즈 예술론에서는 잠재성(the potential)-현실성(theactualized)의 층위로 구분되는 세계의 존재론적 층위에서 잠재성의 세계가 예술이 관계하는 대상이다.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지각되는 현실은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특정한 계기와 배치에 의해 우연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세계는 지각되지 않는 힘들의 구성체다. 일원론적 존재론자인 들뢰즈에게 미메시스 예술론이 뿌리 내린 심층-표면의 이분법은 가능하지 않다. 힘들이 세계를 구성하지만 그 힘들은 그것이 구성하는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들뢰즈 예술론은 표면의 예술론이다.

 3. 들뢰즈의 존재론은 인간주의를 넘어선다. 분자와 DNA의 세계에서는 유기적인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분간 불가능하며 규정되어 있지 않아서0(zero)이 되거나 지각 불가능하게 된 지대이다. 그 세계는 한마디로 “강력한 비-유기적 삶”의 세계, 강렬도 0의 세계다. 여기서 0이란 힘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힘이 펼쳐지지 않고 말려서 응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세계는 힘들이 응축되고 풀려가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공간이다. 삶은 지각 불가능한 지대를 통과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각하는 구성체들을 다시 분자의 형태로 돌이켜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예술만이 지각 불가능한 지대, 혹은 잠재성의 지대를 표현한다. 지각되는 대상은 기관 있는 신체이다. 예술은 기관 있는 신체를 분자화하며 강렬도 0의 세계를 드러낸다.

 예컨대 현대추상미술에서 발견되는 대상들의 극단적 해체와 재구성 작업이 좋은 예이다. 들뢰즈가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는 아일랜드 화가 베이컨의 작업도 현실화된 세계에서 인지되는 형태들을 분자론의 차원, 혹은 기관 없는 신체의 차원에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낳은 결과이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파울 클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가 예술의 대상이다.

 4. 예술은 감각의 지각체이다. 지각되지 않는 힘들이 우리를 생성하게 한다. 그런 힘들은 일상적인 감정이나 정서에서는 억압되거나 묻혀있다. 우리의 일상적 감각은 지배적인 감각의 체계로 틀 지워지고 영토화되어 있다. 예술은 영토화된 틀을 탈영토화하고 홈파인 공간을 매끈하게 만든다. 영토와 홈은 예술의 적이다. 예술은 어떤 힘들이 그런 지각되는 틀, 기관 있는 신체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힘들이 재조직될 때 새로운 구성물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예술가가 듣고 보고 기록하는 것은 “아직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오지 않은 기형들”이 지닌 잠재적인 힘, 혹은 기관 없는 신체이다. 이 ‘기형들’에 주목한 화가가 앞서 언급한 베이컨이다. 이제 문학예술의 전위성이 뜻하는 것을 들뢰즈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은 세계를 모방하거나 뒤따르지 않는다. 굳이 말하면 세계가 그에 앞선 예술을 따라가야 한다. 예술의 전위성이다. 이런 잠재성, 전위성의 문제는 문학의 경우에 인물(캐릭터)의형상화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의 공연(연극)이나 상영(영화)에서 맥베스나맥베스 부인은 원작에 그려진 인물들의 반복이나 모방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인물이다. 그들은 매번 새롭게 공연되고 읽히는 작품에만 존재하는 독립적인 지각체다. 작가는 언어의 힘으로, 영화감독은 영상의 힘으로 그런 인물을 창조한다. 그리고 독자와 관객에게 묻는다. “여기 이런 인물들이 있다. 당신들은 이런 인물을 본 적이 있는가. 여기 인물들이 보이는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감정과 감각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렇게 우리가 특정한 감정의 구조가 지배하는 삶에서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인물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실존을 뛰어난 문학과 영화는 제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정과 지각의 한계를 깨닫게 만든다. 연극공연은 원형의 반복이 아니다. 강하게 말하면 예술에서 반복되거나 재현되어야 할 원형은 없다. 공연마다매번 새롭게 창조되는 맥베스 부부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들뢰즈에게 문학예술은 ‘차이의 반복’ 혹은 ‘반복의 차이’에 관계한다. 차이나는 힘의 예술론으로서 들뢰즈 예술론은 미메시스론에서 포스트미메시스론으로 도주한다. 단호하면서도 신중하게. (이 글은 졸저 『포스트미메시스 문학이론』(2018)의 서론과 6장 ‘질 들뢰즈: 미메시스 예술론에서 도주하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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