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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 낙태죄 폐지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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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사진출처 : pixabay

   20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역사적인 날이다. 재판관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의견을 냄으로써 압도적 다수가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다. 형법에서 낙태죄가 존치된 지 66년, 헌법재판소의 2012년 합헌 결정 7년 만에 이루어낸 전진이다.

   그간 여성단체들과 다수의 시민들은 임신중단을 결정한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하는데 반대해 왔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모든 시민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분리될 수 없고 그 선택에 대해 여성을 국가가 처벌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며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둘째, 낙태 비범죄화는 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이다. 가장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 중 하나인 아일랜드를 비롯해(2018년 폐지) 많은 국가들이 낙태를 이미 비범죄화했다.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1년에 이어 2018년에도 대한민국 정부에게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비범죄화를 권고한 바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임신 중단권을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해왔다. 셋째, 이번에 심의 대상이 된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의 낙태죄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고, 원치 않는 임신이라도 출산을 강요함으로써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실제 낙태죄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임신 및 출산권 등을 포함하는 재생산권을 침해하며 여성의 건강과 삶을 실질적으로 위협해 왔다(한국여성단체연합, 2019년 1월 31일).

   사실 돌이켜 보면, 낙태죄는 여성의 몸을 통치 수단으로만 본 근대 남성중심 권력체계의 산물이다. 근대 국민국가 성립 과정에서 발전한 생명정치는 여성의 몸을 역사 외부(생물학적 존재)에 배치시키면서 동시에 역사 내부(지식-권력의 기법)에 배치시켜왔다. 생물학적이자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은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리된 존재로 배타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은 철저히 계산되고 측정되고, 계층화되고, 배치되고, 지식과 규율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자연적 현상으로 고정화되고 정상화되어 왔다. 결국 낙태에 대한 담론은 성차별의 현실에서 섹슈얼리티를 통치권의 중심에 두는 정치학이 결합된 결과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은 출산력이 국가 발전의 저해요소라는 관점에서 오랫동안 시행해 오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출산장려 정책으로 전환한 바 있다. 저출산이 국가발전의 저해요소로 인지되면서 강제 피임, 강제 불임 정책이 낙태 방지 정책으로 변한 것이다. 표면적으로 상반된 듯 보이나 사실은 여성의 출산력을 정치화시키고 하나의 제도 속으로 편입시킨 재생산 통제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다.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각축하는 장이 된 여성의 몸은 재생산의 도구이자 사회적 관리 대상이었으며, 모성과 양육이 가장 중요한 여성의 역할로 확증되면서 ‘성 계급’ 체계 또한 고착화되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요구는 단지 자유로운 임신 중단권만을 위함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성 계급 체계의 종식과 전면적 차별 철폐를 위한 필수 과정으로서 낙태죄 폐지를 요구해 왔다. 성평등한 사회를 열망하는 여성들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장애물들, 동등한 자원 접근을 막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장애물들을 인지하고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오랫동안 역설해 왔다. 여기에는 비혼, 10대, 저소득층, 성 소수자, 장애인, 미등록 외국인 등 다양한 여성들이 안전하고 동등하게 성관계를 할 권리, 성적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한 자원에 접근할 권리, 임신·출산·양육 관련 서비스를 동등하게 받을 권리, 사회적 낙인 없이 자녀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권리, 동등하게 참여하고 동등하게 일할 권리, 공평하게 자원을 배분 받을 권리,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권리 등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헌재의 판결과 더불어 2020년 12월 31일까지 이루어져야 할 법 조항 개정은 또 다른 과제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임신중지의 사유, 결정권자,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임신주수, 유산 유도제의 도입, 사후 건강권 확보,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관련된 안전한 정보를 얻고 상담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의 구축, 부처 간 통합적 정책 마련 등이 그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낙태죄 폐지는 성건강과 재생산권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차별과 불평등, 낙인의 조건들을 검토하여 정의의 틀을 새롭게 세우는 작업으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4월, 비로소 대한민국은 도전받아야 할 낡은 신념 체계 중 하나인 낙태죄를 허물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나갈 하나의 방향타를 얻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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