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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잿불
문득, 갑작스러운 날들로부터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여장천 사진작가
   
  △ 속초 장천마을 초입에서 바라본 숲.  

   비가 온다던 날씨는 따갑게도 화창하다. 큰불이 난 지 3주가 되는 날, 속초.

   차를 빌린다. 2년 전 들렀던 아바이마을 식당으로 곧장 향한다. 여전히 밝으신 사장님은 “이번엔 혼자 왔네요”하며, 이곳에서 친구들과 같이 나눈 오랜 대화를 기억해주신다. 화재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과 마저 반가움을 나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글씨가 조금 더 빽빽해진 벽을 훑는다. 벽에는 사람들이 날짜를 적고, 같이 온 사람의 이름을 나란히 붙여놓고, 그날의 기억 혹은 앞으로의 소망을 남겨 놓는다. 6달 전 한 커플은 두 번째 방문을 기념하며 느낌표를 붙이고, 4년 전 인근 군부대의 상병은 제대가 빨리 오길 간절히 빈다. 제각각인 크기와 필체를 지나며 한참을 기웃거리다, 한 부부가 새겨 놓은 작은 공간에서 문득 눈이 멈춘다. ‘아들, 보고 싶다 사랑해’라고 작은 글씨가 정갈하게 쓰여있다.

   “티쳐, 파이어!”

   정확히 두 단어다. 중학교 2학년, 4층 영어학원 창가. 수업 중인 원어민 선생님께 화들짝 외친다. 늘 말없이 앉아있는 나의 큰소리에 반 친구들 모두가 창가로 달라붙는다. 도로 건너편 건물 지하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을 본다. 인도까지 번진 불은 계단을 타고 서서히 내려가더니 이내 연기가 되어 치솟고, 순식간에 눈앞은 온통 회색빛이 되어버린다. 곧 크고 작은 소방차가 줄지어 도착하고, 학원의 커튼이 닫히고, 나는 그 틈으로 남은 수업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엔 변성기 남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끊임없고, 친구의 책상 위엔 흰 꽃 하나가 올려져 있다.

   
  △ 불에 탄 영랑호 건물 옆으로 새싹이 자란다.  

   다음에 또 오라는 사장님의 말에 그러겠다며 웃는다. 마을을 빠져나와 차로 속초 주변을 돈다. 군데군데 불이 지나간 자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외딴 섬처럼 혼자 그을린 곳도 눈에 띈다. 나무가 우거진 곳을 지난다. 창문을 내리자 재 냄새가 옅게 들어오는 듯하다. 터미널 건너 한국전력공사 앞에선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장천마을 초입을 지나 영랑호에 배회하던 차를 세운다. 천천히 호수를 따라 걷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검게 무너져 내린 건물들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에 불현듯 새벽 2시의 실시간 뉴스가 떠오른다. 진행자는 전화 연결된 시민에게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지 묻고, 시민은 집이 전소되 었다는 말만 반복하며 저도 모르게 큰 한숨을 뱉는다. 잠시간 할 말을 잃은 방송을 보며, 마우스 하나 손에 쥔 채 애꿎은 내 방을 답답해한다.

   “반장, 뭐하노”

   늦은 밤 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방학, 전화할 일이 거의 없는 친구는 웬일로 차분하다. 말을 이어간다. 같은 반이던 친구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급히 반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병원으로 간다. 경황없는 표정으로 하나 둘 모인 친구들은 써온 편지를 모은다.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집에서 불이 나고, 친구는 3층에서 뛰어내리다 머리를 다쳤다고 한다. 중환자실 에서 마주한 친구는 그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머지않은 날에, 친구가 탄 검은 차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있다. 뒤를 따라 걷는 남학생들이 한층 굵어진 목소리로 낮게 훌쩍인다. 어느새 식장에 도착하고, 손엔 흰 꽃 하나가 들려있다.

   
  △ 영랑호 호숫가에 가지런히 놓인 나뭇가지.  

   오후가 되자 날이 조금 어두워진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낀다. 비가 오려나 싶다. 짙은 잔해들 틈으로 남아있는 색들이 점점 선명해진다. 카메라 뷰파인더 속엔 연두색 새싹이 재를 뚫고 자라나고, 분홍색 꽃은 그을린 줄기 끝에서 새로운 봉우리를 틔운다. 멈춘 것들 옆으로 그새 시간이 또 흐른다. 호숫가 나무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잔잔한 물결과 잘린 나무 밑동을 멍하니 쳐다본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붉게 타오르고, 또 검게 남겨진 것들을 생각한다. 남겨진 말들과 뒤늦게 남기는 말을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과 하지 못한 말을 생각한다. 식당에서 봤던 글씨를 떠올리다 팽목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더듬는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는 정지용 시인의 문장을 꺼내놓고, 다시 또 두 친구의 표정을 바라본다. 장난기 많은 중학교 친구는 나를 울리면서 잔망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순둥순둥한 고등학교 친구는 체육시간에 뛰어 가면서 해맑게 슬쩍 웃는다. 둘 다 웃으면 작은 눈이 사라진다. 왜 그날 그 순간의 웃음일까 생각하면서, 그들이 내게 미리 남겨둔 거의 유일한 기억을 되풀이한다. 벌써 참 오랜 것을 또 한 번 꺼내어본다. 다시 어린 친구는 잔망스런 입꼬리를, 다시 어린 친구는 해맑은 웃음을 짓는다. 죽음 뒤에 남겨진 것들은 재가 아니라 잿불이라 생각해본다. 재 밑에서 꺼지지 않는 무언가가 이따금 계속해서 다시 떠오른다.

   영랑호 호숫가에는 잘린 나뭇가지들이 가지런히 묶여있다. 사람들은 싣고 옮기는 것을 반복한다. 다음날, 뒤늦게서야 온종일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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