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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5·18의 현재와 정신계승
[208호] 2019년 05월 13일 (월) 이덕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학예연구사
   
  △ 5·18민주화운동 제 39주년 기념 기획전시 포스터(사진제공 : 이덕재)  

   1980년 당시 5.18 광주는 하나의 점이었다. 외롭고도 두려웠던 절해의 외딴섬이었다. 광주로 들고나는 모든 교통과 통신망은 완전히 끊기고 파괴됐다. 신군부는 신문과 방송을 검열하고 통제하면서 왜곡된 정보와 가짜뉴스를 서슴없이 양산하고 유포했다. 각종 유언비어와 왜곡보도로 타 지역은 5월 광주에 철저히 침묵했다. 광주는 한동안 고립됐고 일부지역의 손가락질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광주시민들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동체 내부뿐이었다. 광주항쟁 열흘 동안 해방구를 만들고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부의 힘에 있었다.

   하지만 5·18 기간 동안 전남 목포와 해남, 화순, 함평, 무안 등지에서도 집회와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광주가 잠시 침묵하던 시기 타 지역에서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전국의 대학과 종교단체, 노동자·농민들이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들은 광주를 민주주의의 성지라 부르며 5월 순례를 조직했고 전국에서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무수한 항쟁을 전개했다. 전국의 미국 문화원이 불탔고 정부기관이 점거 당했으며 무수한 학생과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 점과 점들이 연결돼 선이 됐고 6월 항쟁을 통해 면이 됐으며 마침내 2016년부터 타오른 박근혜 탄핵 촛불광장에서 입체가 됐다. 그렇게 광주의 5월은 전국의 5월이 됐다. 

   올해로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벌써 39년째다. 제법 시간이 흐르고 피해자의 명예회복도 어느 정도 이뤄졌으니 그날의 상처가 아물 법도 하다. 그런데 광주는 지금도 여전히 시리고 아프다. 대한민국 극우와 일부 보수들이 5·18에 대한 망언과 망동을 계속하면서 상처를 후벼 파고 있어서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다. 사실 5·18은 이미 사법적 단죄를 통해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이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1995년 12월 전두환·노태우 일당을 12·12군사반란과 5·17내란, 불법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이후 재판을 통해 처벌한 바 있다. 5·18민주화운 동은 김영삼 정부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뒤 매년 정부차원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5·18에 대한 폄훼와 가짜뉴스, 색깔론으로 얼룩진 패악질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친북딱지를 붙여 시비를 걸었다. 전두환 씨와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은 북한군 600명 개입설이라는 가짜뉴스와 색깔론으로 5·18을 분칠하고 있다. 전 씨는 2017 년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다. 또 “광주사태 당시 기총 소사는 없었다”며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은 지난 2월 8일 5·18진상규명공청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지만원 씨는 “5·18 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거나 “전두환은 영웅”이라는 가짜뉴스와 망언을 쏟아냈다. 이 의원은 “5·18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흰소리를 했고, 김순례 의원은 5·18유공자를 “이상한 괴물집단”이라고 폄훼했다.

   사법적 단죄와 국가기념일 제정에도 불구하고 5·18에 대한 폄훼와 가짜뉴스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5·18에 대한 온전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못해서다. 정작 5·18을 역사적으로 복권 시켰다고 평가받는 김영삼 정부는 애초 전두환과 노태우 씨에 대한 처벌의지가 미약했다. 그는 정부 출범 후 “문민정부는 5·18 연장선에 있는 민주정부”라면서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검찰 역시 1995년 5·18 관련 고소사건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 운운하며 관련자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19일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을 폭로하자 궁지에 몰린 김 전 대통령은 11월 24일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다. 이처럼 5·18특별법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온전한 진실규명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두환·노태우 씨는 1997년 대통령선거 후 인 12월 22일 사면복권돼 수감 2년 만에 석방됐다. 

   그 후 계엄군의 고문, 학살, 암매장, 성폭력 등 인권유린과 헬기사격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5·18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18 진실왜곡과 사실은폐, 가짜뉴스의 실태를 규명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국회는 지난해 3월 31일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5·18진상 규명위원회를 설치해 1980년 5·18 당시 광주 일대에서 벌어진 국가권력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조사대상에 북한군 투입설을 포함하자고 억지를 부려 결국 관철시켰다.

   이 때문에 조사범위에는 군의 민간인 학 살과 사망·실종·암매장, 군의 최초 발포 경위와 집단발포 책임소재, 군의 헬기사격 의혹에 더해 북한군 개입설이 추가됐다. 5·18 진상규명특별법은 제정 후 6개월 만인 9월 14일 시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5·18진상 규명특별위원회 구성은 감감 무소식이다. 자유한국당이 법적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2명의 위원 재추천 요구를 묵살하고 여당 추천위원의 자격을 문제 삼고 있어서다.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5·18 진상규명 의지를 꺾겠다는 물귀신 작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5·18 진상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폭력의 고리를 끊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근현대사는 무수한 국가폭력의 악순환으로 점철됐다.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과 전시 성노예 착취, 4·3과 여순 등 해방 공간에서 좌우익의 학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4·19와 5·18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법에 앞서 상식과 정의에 입각한 진상규명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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