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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연구등록생이라는 헛된 이름
[207호] 2019년 03월 25일 (월) 익 명 등골브레이커

   처음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학부) 졸업식 뒤풀이에서 만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역시 금수저였구나? 어쩐지 취업준비를 안 하더라니! 하지만 나는 금수저도, 취준 포기생도 아니었다. 단지 학부생 때 배웠던 것들을 조금 더 깊이 알아가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평범한 대학생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그런 욕망 따위는 고이 접어두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대학원에서 8학기를 보내는 동안 부모님의 등골브레이커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올해 초 부모님은 자축파티를 벌였다. 내가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이제 더 이상 진학할 수 있는 상급 과정이 없기 때문에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웃픈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방구석에 앉아 돈벌 궁리를 하고 있던 내게 문자가 도착했다. 기간 내에 등록금을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박사과정생들은 수료 이후 1년 동안 ‘연구등록생A’라는 신분을 갖게 되며 그에 따르는 비용을 납부해야 됐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부모님께 연락했다.
   연구등록비는 약 72만 원이었다. 엄마는 “그래도 이전처럼 480만 원을 다 내는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차라리 안도하는 듯했다. 잠시 고민했다. 엄마 말대로 재학생 때에 비해 납부할 금액이 대폭 줄어들었으니 좋아해야하는 걸까.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72만 원이라는 액수가 산출된 방식에 대한 의문만이 맴돌았다. 연구등록금은 대체 어디 쓰이는 돈인가. 따지고 보면 나는 잠시간 학교와 절연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연구실에서도 짐을 뺐고, 수업도 듣지 않았다.
   알아보니 연구등록비 징수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보니 대학 별로 격차가 5배 이상 나는 등 금액도 천차만별이었다.(서울시내의 A대학에서는 40만원 정도의 연구등록금을 징수하고 있어 우리학교의 반액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사용처도 도서관 및 전산실, 학교 운영비, 학생지원, 직원 인건비 등 제각각 이었다. 아예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학교도 있었다. 불법의 소지가 있는 교직원의 급여 보조 형태로 사용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런 탓에 연구등록비는 제 2의 기성회비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쯤 되니 졸업식 뒤풀이 자리에서 만났던 선배의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대학은 우리를 ‘소액’의 연구등록비 쯤은 어렵지 않게 납부할 수 있는 금수저, 아니면 오갈 데가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이라도 돈을 내고 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다른 졸업 유예생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연구등록A’라는 제도를 박사생들에게만 강요할 리가 있겠는가. 의무 등록 기간이 지난 후 ‘필요에 한해’ 대학에 적을 둘 수 있게 하는 제도(연구등록생B)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여담이지만, 연구등록생들은 등록은 등록대로 하면서 각종 혜택에서는 배제된다. 나는 해가 바뀌면서 이전에 장학금을 받고 일하던 교내 기관에서 직위해제를 당했다.(주변에서는 학교의 그런 처사가 부당하니 문제를 제기해볼 것을 권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만큼 대우가 좋지는 않았기에 군말 않고 짐을 쌌다.) 요즘은 다시 학교에 나온다. 납부한 금액을 떠올리며 매일 5회 이상 학교의 정수기와 화장실을 이용하고, 와이파이와 전기를 사용한다. 연구등록생이란 헛된 이름이 내게 준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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