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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묘] 기계비평, 오염된 기계의 습격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기계비평의 정체성을 찾아
[207호] 2019년 03월 25일 (월) 강부원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
   
  △ 사진출처 : pixabay  

   손도끼와 수레바퀴로부터 시작된 기계의 역사는 이제 최첨단 정밀 가공 기계와 빠르고 거대한 운송 기계로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기술은 좀 더 빠르고, 좀 더 큰 힘을 내는 기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렇기에 기계의 가치는 주로 그 기계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와 최대량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 기계의 생명은 속도와 힘에 있다. 고전 물리학의 법칙(F=ma)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장치이자 도구가 곧 기계인 셈이다.
   근대사회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해이다. 인문적 사유와 예술의 부흥, 그리고 법과 제도에 기초한 근대적 개인의 출현이 근대성의 한 축을 구성하는 부분이라면 그 다른 한편에는 거대하고 복잡한 기계 개발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근대 사회에서 기계는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을 전적으로 구동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인간 생활의 필수적인 항목이 되었다. 노동력과 생산력의 함수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거대한 기계들의 발명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과 성장의 동력이 되었으며 이는 근대 사회의 매우 중요한 속성으로 자리매김 한다. 강하고, 무겁고, 빠른 기계만이 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기계란 결국 인체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지배정책의 역사적 부산물이기도 한 셈이다.
   그럼에도 기계의 본질이 인간의 노동을 보조하며,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것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엄청난 물리량을 발휘하는 기계를 마주하는 순간 기계의 본질은 쉽게 휘발된다. 본질을 놓친 기술은 인간의 존재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근대의 기술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도구적인 가치로만 전유되는 상황에서 기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더 이상 지체돼선 안 된다. 국가와 자본은 끊임없이 기계의 비밀을 은폐한다. 그 은폐의 역사 뒤에는 거대하고 안전해 보이는 배를 타고가다 죽게 된 ‘세월호 참사’나 비정규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하게 된 ‘태안화력발전소 사건’,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죽음을 맞게 된 ‘구의역 사건’과 같은 아이러니한 비극들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무참한 사고들과 기계는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더 이상 기계와 인간, 기계와 사회는 분리 가능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기계에 대한 비평은 줄곧 미뤄져 왔다. 공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평소 공기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근래 일어난 미세먼지 사태는 공기에 대한 관점의 전환을 촉구한다. 그러나 너무 늦은 대응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게 한다. 기계에 대한 성찰과 비평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계비평이 단순히 ‘기계적인 지식’을 확보하는 일만은 아니다. 기계비평이란 기계에 대한 사유를 비평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의 실천이자 산물이다. 기계비평은 기계의 물질성에서부터 시작해 인간과 기계가 맺는 관계까지를 살피는 총합적인 행위임은 물론 문학, 예술 같은 전통적인 비평의 영역을 넘어 이제 기계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의 전환이기도 하다. 기계비평은 ‘기계에 관한 지식’을 지향한다. 인간의 삶과 기술 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설명할 때 그 핵심 고리로서 ‘기계’의 위상과 의미에 대한 해석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른 때에 비로소 ‘기계비평’은 등장하게 됐다. 이영준의 『기계비평』(워크룸, 2006)이 물꼬를 텄으며, 최근 출간된 공동저작 『기계비평들』(워크룸, 2019)은 그 진전을 보여준다.
   한편 기계비평은 가속화된 기술발전을 종용하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담론과 그 지적투쟁의 과정에서 제출된 운동과 실천의 한 양식이기도 하다. 한국은 개발을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성장이데올로기의 강박에 빠진 국가이다. 한국 경제 성장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기술의 비정상적 발전에 따른 부조리와 모순을 찾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지금껏 잘못된 기계가 발생시키는 ‘모순의 연쇄’를 바로잡기보다 값싼 노동과 인간의 생명으로 이를 대체하기에만 급급했다. 국가의 지배와 통치의 메커니즘을 강화하기 위한, 혹은 자본의 증식 모델에만 충실하게 복무하는 기계의 개발과 운용이 반복된 것이다. 지역격차와 소득양극화, 노동자 천시 문화 등의 결과들이 바로 그 후과에 해당한다.
   오랫동안 과학과 기술은 객관적-합리적 지식이라는 불멸의 위상을 누려왔다. 2006년 ‘황우석 사건’ 이후 그 신화는 철저하게 붕괴됐다. 이제 과학과 기술은 해석과 가치 판단이 요구되는 긴장된 지식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게 되었다. 과학과 기술은 자연과 공학의 영역에만 속하는 비밀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망 속의 살아있는 지식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기계비평은 국가와 자본의 ‘기술적 습격’과 막연한 낙관주의가 초래할 ‘기계의 오염’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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