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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산책] ‘기(記)’와 ‘억(憶)’, 그리고 기억의 정치학
유령화된 기억과 현전하는 기억
[207호] 2019년 03월 25일 (월) 김문주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사진출처 : pixabay  

   기억은 ‘記-쓰다’와 ‘憶-생각하다’라는 의식 활동이 결합된 말이다. ‘記’는 기록하는 일이고 ‘憶’은 의식에 기록된 것을 되살려 생각하는 일이다. 기록하고, 이를 다시 생각해내는 일은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식적인 작업이며, 여기에는 경험한 바를 저장하려는 노력과 그 경험의 결과를 이후의 시간 속에 유효한 것으로 잇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를 현재의 거울로 삼으려는 일이고, 한편으로는 시간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우리 자신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한 존재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자신이 누구인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결정되며, 그러한 기억 속에서 나는 현재의 나를 살게 되는 것이다.
   한 집단의 정체성 역시 집단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집단들에서 일어나는 과거와 관련된 쟁투(爭鬪)는 자신들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정체성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집단 공동의 기억을 역사(歷史)라고 한다. 한 집단의 정체성은 이 역사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형성되며, 그것은 집단이 공동으로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는 것을 뜻한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은 자기 존재를 무엇으로 인식할 것인가를 다투는 싸움이다. 그런 점에서 정체성의 개조는 기억의 개조이기도 하다.
   한·일간의 오랜 갈등의 역사는 기억과 망각을 둘러싼 싸움이다. 일본이 지우려고 하는 기억을 한국은 기록하고 다시 되살리려 한다. 그 망각과 기억 사이에 한 집단의 정체성과 윤리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그것은 역사적 기억이 구성원들의 현재적 의식·의지와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일본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가 지우고자 하는 역사도 있다. 베트남전 한국군 참전지에는 한국군의 만행을 기록한 증오비들이 여러 기 세워져 있는데, 지금은 연꽃문양의 대리석이 덮고 있는 하미마을 위령비의 안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968년 이른 봄 음력 1월 26일 청룡병사들이 미친 듯이 와서 양민을 학살했다. 하미마을 30가구 중에 135명이 죽었다. 피가 이 지역을 물들이고, 모래와 뼈가 뒤엉켜 섞이고 집들은 불타고, 불에 그을린 시신들이 얼키고 설키고 개미들이 불탄 시신들을 갉아먹고, 피냄새가 진동했다. (중략) 과거의 전장이었던 이곳에 이제 고통은 줄어들고 있고, 한국인들은 다시 이곳에 찾아와 과거의 한스러운 일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그리하여 용서의 바탕 위에 이 비석을 세웠다. 우리는 인도적인 인의로 고향의 발전과 협력을 열어갈 것이다. 이 모래사장과 포플러 나무들이 양민학살을 기억할 것이다”
   일본이 그러한 것처럼, 대한민국이 덮고 싶은 기억이 천년을 가는 돌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20년 전 월남참전전우회가 3만 달러를 기부하여 세워진 위령비의 뒷면에 주민들은 학살의 경과를 적었고 이 내용을 지워줄 것을 요청한 전우회 측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연꽃 문양의 대리석이 덮여진 채로 하미마을의 위령비는 제막되었다. 과거는 용서하였지만 사실 내용을 기록하겠다는 의지와 과거를 기부로서 덮고자 했던 행위가 연꽃의 대리석으로 봉합되어 있다. 이 위장의 대리석을 여는 것, 그래서 여기에 새겨진 기록을 과거의 사실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의 현재적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 집단의 정체성과 그것을 구성하는 윤리성은 과거의 사실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처리하는가에 달려 있다.  
   4월은 유별나게 기억할 날들이 많은 달이다. 그 기억들은 대체로 고통스러운 것들인데, 그래서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그 자체가 괴로운 일이고, 더욱이 그 고통스러운 사건이 잘잘못을 가려야만 하는 일일 때, 기억을 둘러싼 과정은 깊은 갈등과 다툼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한 점에서 기억은 한 공동체의 윤리와 의지가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작업이다. 우리의 4월에는 이미 공동체의 역사적 기억으로 자리 잡은 사건과 하나의 기억으로서 구성되어 가는 사건, 그리고 이제 막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사건들이 점철되어 있다.
   60년 전에 있었던 4월 혁명은 우리 공동체가 이미 합의한 ‘역사적 기억’이다. 헌법에도 명문화되었고 국가적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여러 기억의 장치들로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일어났던 제주 4·3은 아직 그 이름조차 명명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것은 이 사건이 우리 공동체의 오랜 숙제인 이념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보다 깊은 역사적 뿌리에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제주 4·3은 역사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좀더 성숙하고 진전된 인식이 마련될 때 비로소 온전한 기억의 장으로 수렴될 것이다. 아직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4·16 세월호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노란 리본과 뱃지를 달고 다녔지만, 4·16을 무엇으로 기억할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304명의 대규모의 인명이 물에 잠긴 참사였고 희생자의 상당수가 어린 학생들이었기에 깊은 충격과 상심을 안겨주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사건과 관련된 많은 것을 망각하고 있다. 4·16는 어떤 의미로서 기억될 사건인가.
   ‘당신(들)을 잊지 않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어떤 사건과 참사 앞에서 곧잘 이런 말을 한다. 그것은 물론 사실 자체를 기억하겠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겠다는 것이고, 이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의 사건을 둘러싼 그릇된 일들을 시정하겠다는 의식과 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이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기억은 고통스러운 일을 덮으려는 망각으로부터의 투쟁이며, 잘못된 일을 바로 잡으려는 지속적인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 경로와 방법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억은 단순히 우리 의식에 쓰는 것[記]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억은 씌어진 것을 간직하여 되살리는 작업이고, 그것은 사건의 의미와 의의를 현재 속에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지속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점에서 다시, 기억은 의식과 의지와 윤리에 속한 문제이다. 그리하여 한 집단이 무엇인가를 계속하여 기억한다는 것은 공동체의 가치와 방향에 대한 어떤 합의이자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想起)하고 현재화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기록에 멈춘 ‘역사적 기억’은 공동체의 현재 구성원들의 삶과 일상 속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장(死藏)된 사건일 뿐이다.     
   집단적 기억이 현재화할 수 있는 장(場)을 갖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한 집단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인자가 될 수 없다. 경험주의 사회학자인 알브박스는 살아 있는 인간들을 결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공동 기억’이며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확증에 의해 지속되는데 반해, ‘역사적 기억’은 공동의 기억과 달리 집단의 특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능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바 있다. 
   기념관이나 역사책 안에서, 혹은 특정한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의 기록으로서 떠올리게 되는 사건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는 역사적 기억, 제도화된 기억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한 집단의 정체성에 기여하는 집단적 기억이란 구성원들의 현재 속에 보존되고 생생하게 운동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것이 집단의 정체성과 구성원들의 내면에 오래오래 남게 되리라는 확신 속에서 지속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한 점에서 송덕의 최고 형식은 명예의 전당이나 기념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의 영혼 속에 구현된 기억이고, 그 기억은 ‘물질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구성원의 내부에 살아 있는 의식이며, 구성원들의 삶으로서 환원되는 생생한 현전인 것이다.
   연초록의 여린 잎들이 푸르고 푸르러서, 더 생생하고 더 아픈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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