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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유일한 애도
세월호의 들숨과 날숨
[207호] 2019년 03월 25일 (월) 홍진훤 사진가
   
  △ 진도 팽목항, 2014  

   우주가 가라앉은 날. 알 수 없는 자책에 숨도 편히 내뱉지 못하던 나날을 버티다 해가 지고 나서야 차를 몰고 진도로 향했다. 2014년 오월의 밤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따뜻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팽목항. 한없이 무거운 공기들로 가득 찬 항구에서 시선은 쉽사리 바다로 향하지 못하고 연신 고개를 떨궈 먼지뿐인 바닥을 향했다. 서걱서걱한 발걸음 소리가 혹여나 실종자 가족들의 잠을 방해할까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주변을 서성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동이 터오고 피곤이 몰려올 때쯤 눈부시게 하얀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물안개가 함께 피어올랐다. 그 바다와의 첫 대면이었다. 배가 침몰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 안에 사람이 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실종자가 사망자가 되는 것뿐인 이 하염없는 바다 앞에서 초점을 잃은 채 오래 바라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다시 슬퍼하기로 했다. 여전히 자책하며 말없이 바라보는 일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였다.
   두 해가 흘렀다. 안산 기억저장소에 부탁해 2014년 단원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일정표를 구했다. 그 일정표를 따라 한동안 제주를 여행했다. 아이들이 봤을 풍경을 보고 아이들이 묵었을 숙소에서 잠을 잤다. 아이들이 가기로 했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아이들이 걸었을 길을 걸었다. 아무도 도착하지 못한 섬에서 부질없는 셔터를 연신 끊어댔다. 한때는 정언명령과도 같았던 잊지 않겠다는 선언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노란 리본이 조금씩 무뎌지고 광화문의 농성장이 당연한 것이 되어갈 때쯤 제주의 바다 앞에서 진도의 바다를 생각했다. 각인은 무엇을 통해 통증이 되는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안산의 하늘과 진도의 바다, 제주의 바람이 떠올랐다. 더 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이 완전히 변해버린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숙소로 예정되어있던 블루하와이 리조트의 차곡이 개어진 이불 앞에 서서 그날 이후로 몸에 차곡차곡 쌓인 부재의 감각들을 더듬었다. 이것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조금이라도 연장 시킬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정보다 오래 제주를 드나들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였다.

   
  △ 제주 블루하와이 리조트, 2016  

   광화문 광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추모 문화제가 있던 날이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발언이 끝나자 노란 잠바를 맞춰 입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영전에 추모곡을 바쳤다. 문득 숭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5년 동안 떠나지 못하고 진상규명을 외쳤던 그 광장이었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수없이 외쳤던 그 뜨거운 밤들이 지나가고, 여전히 진상규명을 외쳐야 하는 그 광장이었다. 구조 0명이라는 한없이 허탈한 숫자 앞에서 존재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 오열했던 시간들이 결국 유가족들을 약한 자들의 곁으로 이끌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다시 만난 건 고 김용균씨의 영결식 날이었다. 영결식이 끝날 때쯤 모인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그 맨 앞줄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해 방송 노동환경 실태를 고발하고 자살한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씨,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 전태일의 동생 전태삼씨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의 아버지 유경근씨였다. 죽은자들의 연대. 살아 남아버린 자들의 연대.

   
  △ 광화문 광장 고 김용균 추모문화제, 2019  

   며칠 전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농성장이 철거되었다. 그 장면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5년 전 가슴을 치며 자책했던 그 마음이 어디에 닿아야 할까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그 겨울밤 노래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진 한 켠 하얀 입김이 눈에 들어왔다. 그 부분을 잘라내 따로 저장을 했다. 촛불 정권이라 불리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배가 왜 침몰했는지 도대체 그 배는 누구의 것인지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사이 유가족들에게 시체 장사를 한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단식하는 유가족 앞에서 피자를 입에 욱여넣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슬픔과 애도는 혐오와 적대로 변해갔고 잊지 않겠다던 다짐은 아직도 세월호인가라는 질문으로 변했다. 잘라낸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한참을 바라봤다. 지금의 유일한 애도는 무엇일까. 어지러운 생각들 틈으로 5년 전 진도의 눈부셨던 바다가 다시 떠올랐다. 잡히지 않는 단어들이 한동안 머리를 나뒹굴었고 그사이 나는 5주기라는 시간의 마디 앞에 덩그러니 놓였다.  다시 사진을 본다. 이가 갈리도록 추웠던 어느 겨울밤, 노란 잠바 넘어 보이는 하얀 입김의 의미에 대해 곱씹고 또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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