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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ORIGINAL] 영허대사 해일의 <영허집(映虛集)>
빛바랜 고전이 기다리는 연구자들의 눈빛
[142호] 2007년 06월 04일 (월) 오대혁 본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빛바랜 고전 원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신기한 일도 없다. 정교한 글씨로 써내려간 필사본에서는 꼿꼿한 선비의 정신세계가 묻어나고, 불설(佛說)을 담아놓은 간본(刊本)에서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은 승려와 신도들의 신앙이 오롯이 수백 년이란 시간의 벽을 넘어 전해져 온다.

고전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이 원전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멜빌의 좬모비 딕(Moby Dick)좭에 대해 매티슨이 원본의 ‘coiled’를 ‘soiled’로 잘못 읽어 빚어낸 비평의 치명적 결함에 대한 이야기가 말하듯, 원전은 고전 연구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작자가 불분명하고, 수많은 이본(異本)들이 존재하는 고전일 경우 원전 텍스트를 잘못 선택하여 비평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작업의 결과만 낳을 뿐인 것이다.

 또한 기존의 대가들이 이룩해놓은 연구 업적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가도, 이 원전을 대하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지금의 언어로, ‘나’의 언어로 풀어놓다보면 어느새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리곤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그런 원전들은 도서관에서 연구자들을 기다리며 잠자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불승들의 문집들이나 불교 관련 서적들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임진왜란 전후 활동했던 승려인 영허대사(映虛大師) 해일(海日, 1541~1609)의 좬영허집(映虛集)좭 역시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야 문집 속에 실려 있던 좥부설전(浮雪傳)좦의 존재 때문에 국문학계에서 관심을 갖게 된 문집인데, 아직도 문집 전체를 번역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간략하게나마 좬영허집좭의 대체적인 모습을 밝히면서 원전 연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좬영허집좭은 시와 산문, 소설 좥부설전좦 등을 수습하고, 행장(行狀)을 덧붙여 그의 제자와 문손(門孫)들이 1635년에 간행한 문집이다. 모두 4권 1책으로, 오언절구(五言絶句) 5편, 칠언절구(七言絶句) 16편, 오언율시(五言律詩) 29편, 칠언율시(七言律詩) 14편, 부(賦) 1편, 가(歌) 1편, 소설[傳] 1편, 유산록(遊山錄) 3편, 행장(行狀)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목판본 2본이 전하고 있다. 같은 해에 간행되긴 했으나 천태산인(天台山人)의 서문이 실린 것과 실리지 않은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이 문집의 편찬 경위는 천태산인(天台山人) 서(序), 함영당(函影堂)의 행장(行狀), 신파거사(新坡居士)의 발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서(序)는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인 전라도 고부(古阜)에 돌아와 있던 천태산인 김지수(金地粹, 1585~1636)가 썼다. 김지수는 평소 영허의 시를 보고 싶어 했다고 하며, 이를 알고 문집을 엮으려던 승려들이 그를 찾아가 1635년에 서(序)를 부탁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는 서(序)에서 영허의 시를 가리켜 “원만하고 밝으며, 고요하고 산뜻하다. 매우 차갑거나 가파르거나 작지 아니하고, 푸른 산봉우리에 기운이 넘치는 듯하고, 요체를 익힌 성정 또한 매우 어지럽지가 않도다. 근본에 있어서나 말에 있어서나 선비에 부합함이 참으로 많도다”라고 평하고 있다. ‘圓明’이라 했으니 본래 청정한 성(性)이 갖추어 두루 비추니 어두운 곳을 보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平淡’이라 했으니, 모든 욕심이 없어 평화롭고 담담한 경지가 시에서 우러난다는 것이다. 사대부가 불승을 찾고 함께 교류했던 역사를 이와 같은 서(序)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영허가 입적한 것은 1609년이요, 문집이 엮인 것은 1635년이다. 발문에 따르면 입적 후 26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스승의 글이 멸실될 것을 염려하여 문하(門下)인 승일(勝一)·홍주(弘珠), 법손(法孫)인 도극(道克)·계언(戒彦)·도혜(道惠) 등이 중심이 되어 문집을 엮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문집은 대부분의 승가문집류들에 나타나는 승전이나 비기(碑記), 찬소(讚疏), 모권(募勸) 등이 없이 그리 많지 않은 시문이 실려 있을 따름이다. 이는 저자가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녔음에도 수행자이자 선사(禪師)로서, 나아가 대중을 이끄는 법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행장(行狀)을 포함하는 문집은 사승(師承) 관계와 저자의 사상, 행적을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한국불교사에서 영허 해일은 뚜렷한 자취를 지닌 인물로 전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문집을 통해 그가 당대 고승이라 할 조선중기 부용영관(芙蓉靈觀, 1485~1571)과 서산대사(西山大師) 등에게서 배우고 익혀 거사불교적이며 정토불교적인 실천행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부용영관은 유·불·도를 회통하고 삼장교학에 조예가 깊어 승속을 가리지 않았고, 그의 제자인 서산은 간화선(看話禪)을 본령의 수행 방식으로 삼으면서도 염불수행을 부정하지 않고 정토신앙까지도 선(禪)의 테두리 안에서 받아들였다. 이러한 불교사상적 특성을 영허가 계승하였음을 이 문집의 시편들과 소설 좥부설전좦은 잘 드러내고 있다.

좬영허집좭은 시문학사에서 조선중기 선승의 시세계를 드러내면서, 좥부설전좦을 통해 기존의 소설사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시편들에 드러나는 ‘망기(忘機)’의 면모는 선시(禪詩)의 정도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부설’이라는 실존 인물을 누군가가 소설화하여 탄생한 작품으로 인식되어왔던 좥부설전좦이 실은 영허라는 승려의 손에 의해 창작된 소설 속 인물임을 좬영허집좭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좥부설전좦은 삽입시의 적극적 활용, 불교용어와 대구·전고의 적절한 활용, 승전의 서사양식 혁신 등을 통해 ‘불교계 전기소설’의 일반적 특성을 드러내면서도, 대승보살계의 입장에서 재가불자나 승려의 수행과 깨달음의 문제를 매우 치밀하게 서사화하고 있어 소설사적 의의가 남다르다 하겠다.

좬영허집좭을 통해 알 수 있는바, 고전 원전에 대한 탐구는 연구자들에게 끊임없는 학문적 욕구를 갖게 한다. 우리의 고전 원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상사와 풍속사, 문학사 등을 위해 연구자들의 빛나는 눈빛을 기다리고 있다.

오대혁 (본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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