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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시대에 살고, 시대를 넘어 살았던 여성들
임해리, 『누가 나를 조선 여인이라 부르는가』, 가람기획, 2007.
에두아르트 푹스, 전은경 역,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 미래M&B, 2007.
[142호] 2007년 06월 04일 (월) 원혜진 편집위원 illuhan@naver.com

   
 
   
 
“여자는…남편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남편의 성격이…온갖 결함으로 가득하더라도, 여자는 신을 섬기듯 그를 존경해야 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모셔야 한다. 남편이 욕하거나 때리면, 여자는…자신이 남편의 화를 돋우는 성가신 존재였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순장됨으로써 신의를 지켜야 한다.”

인도의 성스러운 경전이자 종교서인 마누 법전에 표현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신성한 지배권을 천명하는 대목이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확연히 신장된 요즈음에는 읽는 이에게 거부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내용이지만,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태도는 거의 전 지구상에서 통용되는 진리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남성지배적 신분제 사회 안에서 살아간 여성들의 삶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신간 두 권을 소개할까한다. 먼저 소개할 책은 임해리의 『누가 나를 조선 여인이라 부르는가』이다.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인물들의 생애와 함께 시대개관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과 생활사에 접근하고, 9명의 여성들이 근대 지향적 의식을 갖게 된 배경을 추론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대 전란을 겪은 후의 조선사회는 격심한 변화를 겪었다. 경작지와 인구의 감소, 불법적인 비납세자의 증가, 급격한 신분 변동으로 인한 사회 혼란 등에 대한 집권 양반층의 대처는 예학을 통해 성리학적 규범을 강조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또한 각 가문에서는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결속력, 문벌의식을 고조시키고 가부장제를 강화시켰다. 이에 따라 조선전기에는 출생순서를 따랐던 족보 기재양식이 조선중기 이후 점차 선남후녀(先男後女)의 양식으로 바뀌었고, 상속은 남녀균분상속에서 장남중심상속으로 변화하였다. 한편 가부장제의 강화를 위해 몇 세대에 걸쳐 전개되는 장편 가문소설이 많이 창작되고 읽혔는데, 재미있게도 가문소설의 유행은 소설의 발전과 함께 영정조대 여성 독자층의 형성을 가져와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여성의 주체성 자각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조선 유일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任允摯堂)은 여성의 글이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렸던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문집을 남길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여중군자였다. 그는 종사한 여성만을 열녀로 추앙하는 시대의 장막을 헤치며, 성인의 길에는 남녀의 다름이 없음을 천명하고, 도덕적 실천과 학문으로 사대부들의 오만과 편견을 깨뜨렸다.

평생 모은 천금으로 흉년의 제주를 구휼한 기생 출신 상인 김만덕(金萬德),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태교서를 만든 사주당 이씨(師朱堂李氏), 실학을 바탕으로 가정백과사전을 만든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천주교를 전교하며 남녀평등의 가치관 전파에 일조하고 자유와 평등을 꿈꾸며 순교한 조선 최초의 천주교 여회장 강완숙(姜完淑), 14세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유람하고 조선 최초로 여성 시사(詩社)를 만들고 맹주 노릇을 한 김금원(金錦園), 조선 최초 여성 명창 진채선(陳彩仙), 의병장 윤희순(尹熙順), 여성 계몽과 항일투쟁에 평생을 바친 독립투사 남자현(南慈賢).

우리에게 알려진 조선시대 여인은 신사임당, 허난설헌, 유관순, 몇 명의 왕비들이 전부이다. 이 책의 매력은 그간 알려졌던 몇 명의 여인들 이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인물들을 발굴해내고 새롭게 평가한 데 있다. 다만 9명의 여성들에 대한 추앙이 다소 과하다 싶은 부분이 이따금 눈에 띤다.

   
 
   
 
임해리가 남성 중심의 신분제 사회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은 9명의 조선 여인들의 꿈과 의지, 열정을 살폈다면, 푹스는 『캐리커처로 본 여성 풍속사』에서 남성의 신성한 지배권에 의해 지배받고, 반항하는 여성들의 삶을 캐리커처라는 형식을 통해 풀어냈다. 푹스(Fuchs, 1870~1940)는 독일의 풍속사 연구가이자, 문명사가, 미술 수집가였다.

좬여성 풍속사좭는 캐리커처를 통해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유럽 여성의 결혼관, 성적 욕구 및 남녀 성에 대한 태도, 모드와 성, 의복과 머리, 매춘, 상류사회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정절과 성 윤리, 가부장적 성 윤리 속에서 여성들이 추구하는 성 해방, 여성 해방 운동 등 풍속과 사회상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푹스는 본래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 유머 감각을 가장 많이 발휘한 작품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여성의 육체와 정신이 노동, 교육, 모드 등에 의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상실한 채 기괴하게 비틀려졌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 실린 500여 점의 캐리커처는 여성의 비틀려진 육체와 정신을 때로는 상징적으로,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게, 때로는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캐리커처가 과장되게 보여주는 의식적인 추함은 오히려 신이 만든 피조물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구하는 것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을 되찾을 것을 조용하게 장려하는 듯하다. 이 밖에도 과거 여성의 풍속을 살피는 과정에서 푹스는 캐리커처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민요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였다.

푹스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도와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사유재산에 기반을 둔 모든 사회 질서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로 파악한다. 모든 발전이란 동시에 상대적인 후퇴로써, 즉 어느 한쪽의 복지와 발전은 다른 쪽의 고통과 억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유재산제의 형성이라는 발전은 확실한 친자관계를 유지하며 자녀를 낳아 재산을 상속시키기 위하여 억압받는 여성과 억압하는 남성이라는 구조를 가지게 되는 일부일처제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노예제도에 비유된다. 오래 지속된 노예제도는 서서히 모든 사람, 즉 노예의 주인뿐만 아니라 노예에게도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상태로 인식되게 된다. 이 때문에 “남편이 더 이상 때리지 않는 걸 보니, 이제 날 사랑하지 않아”라는 논법이 가능해지며, 여성의 전체적인 가치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우선 성적 존재로 인식되어 여성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슴과 엉덩이, 허리만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이라는 듯 강조하는 우습고도 슬픈 모드를 만들고 추구하게 된다. 여성은 관습과 예의범절을 지켜야하고 “교양 없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교육은 이기적인 남성중심사회가 남성들의 지배라는 관심사를 위해 만들고 여성들 스스로가 지속시키는 울타리이다. “이런 결과가 바로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정신적으로 종속시키려고 하는 원래 목표이다.”

우리는 좬여성 풍속사좭에 실린 몇 세기 전의 캐리커처에서 여성에 대한 허위, 오만, 편견의 시선이 현재도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르페브르의 ‘직업도 없는데 못생기기까지…’는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증명사진을 보정해야 하는 현재 한국 여성들의 절망감을 그대로 비춰내고 있다. 당시의 유럽이나 작금의 한국이나 여성이 성적 대상으로만 취급되며, 외모가 여성에 대한 판단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빌레트의 캐리커처는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성별 때문에 특정 직업의 진입장벽을 통과할 수 없는 유리천장을 나타낸다.

다만, 푹스 역시 남성이며 그런 의미에서 좬여성 풍속사좭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 가치관을 가진 남성에 의해 쓰였다는 점은 이 책의 태생적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한계는 여성은 본래 신체적으로 불리하며, 성에 대해 수동적인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 여성은 신이 준 가슴과 허리와 둔부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 노처녀란 비참하고 초라한 존재라는 인식 등에서 예기치 못하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푹스가 남성과 여성의 불합리한 지배-종속관계를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찾으려했다는 점만큼은 이 책이 일궈낸 성과물임에 틀림없다.

원혜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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