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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내게 주는 선물, 다정다감한 오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206호] 2018년 11월 19일 (월) 김 세 연 편집위원
   
 

△ 사진출처 : ClipartKorea

 

   2018년에 가장 핫했던 키워드 중 하나는 ‘소확행’이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일,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들, 정결한 면 냄새가 나는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삶은 메마른 사막과도 같다’는 유명한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삶의 질감을 변화시키는 것들은 항상 미시적인 지점으로부터 발생한다.

   소확행 열풍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대중들의 소비 패턴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좇기보다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자’는 사고방식은 사람들에게 작은 사치를 부리는 일을 허용해주었다. 값비싼 디저트나 뷰티아이템, 인테리어 소품 등의 매출 증가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한 눈에 보여준다. 불과 얼마 전만하더라도 ‘욜로 스튜핏! 짠테크 그뤠잇!’(KBS2〈김생민의 영수증〉)을 외쳤던 것만 같은데, 어느 장단에 몸을 맞춰야 할지 조금은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최근의 현상은 ‘N포세대의 생존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취업,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로의 편입이 불가능한 요즘 젊은이들이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그러쥘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1950~60년대에 추구되었던 ‘소시민적 행복’이야말로 한국적 소확행의 역사적 기원이라고 주장하며 소확행의 부상을 저성장 불평등 구조와 연관 짓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은 지난하고, ‘탈조선’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소확행’ 뿐인 것이다.

   소확행을 바라보는 논자들의 시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우선, 자기만의 방식으로 척박한 토양에 뿌리내리는 청년들의 모습을 긍정하는 관점이 있다. 이는 ‘조금 대충 살아도 생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구호로 확장되어 ‘치열함’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기능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기만적 위안에 빠진 ‘초식세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쪽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소확행은 “쌀밥에 고기반찬이 맛있는 것을 뻔히 알지만, 도토리로 배를 채우면서 주린 창자를 속이는 것”(위행복 교수)에 불과하다.

   인문계열 대학원에서 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필자는 개인적으로 전자에 가까운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내게 삶의 여유를 선물해주었다. 이전 같으면 ‘내가 지금 이럴 땐가’ 하고 단념했을 상황에 ‘그래, 좀 이래도 되잖아’ 하며 자비를 베푸는 일이 잦아졌다. 예능프로와 고카페인 음료, 네일아트, 동료 편집위원과의 수다, 달고 짜고 느끼한 것. 시간 관리와 건강 증진을 위해 멀리해왔던 이것들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고 난 뒤, 놀랍게도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연구 성과는 예전과 똑같이 미진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언제나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처럼 뿌옇고 답답하다. 일부 논자들의 말처럼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소확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연구서를 덮고 짱돌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 그러니까 마감에 쫓겨 편집실에서 밤을 새고 있는 나로 돌아와 보자. 삶이 어디 그런가. 세계가 아무리 엉망진창일지라도 우리는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기왕 사는 하루, 내게 좀 다정다감해지는 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은 에소프레소 투 샷을 추가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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