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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말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거부하는 노동자?
52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단상
[205호] 2018년 10월 01일 (월) 이성록 국립한국복지대학교 교수
   
  사진출처 : ClipartKorea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야근공화국이요 과로사회이다. 통계청의 ‘2013년 지역별 고용조사’에서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1,743만 명 중 약 27%인 470만 명이 매일 저녁 8시까지 퇴근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 9시에도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장인이 15% 수준인 260만 명에 달했다. 직장인 10명 중 1명은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사람들(202만 명, 11.6%)이다. 자정 이후 퇴근하는 이들도 61만 명(3.5%)에 이른다.

   OECD의 ‘2017 고용동향’ 역시 우리들의 장시간 과잉노동을 보고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 35개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았으며 이는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시간 노동시간이다. 결국 사람들은 과중한 노동이 삶을 파괴한다면서 “저녁이 없는 삶”에 대해 불평하고 한탄하고 있다. 그래서 “저녁이 있는 삶”이 정치 슬로건이 되기도 했다.

   결국 우리들의 노동시장은, 2004년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한 이후, 또 한 번 거대한 변곡점을 맞게 되었다. 정부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2018년 7월 1일부터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전격 결정한 것이다.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함은 물론, 과로에서 벗어나 노동생산성 향상을 이루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찬 기대와는 달리, 심각한 부작용의 여지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임금감소로 인한 하층 노동시장의 피해 가능성이 제기된다. 소득보충을 위한 추가노동이 차단됨으로써 하층 노동자를 빈곤상태로 밀어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소득이 감소된 노동자들 중에는 퇴근 후 아르바이트 강행함으로써 노동생활의 질 저하도 우려된다.

   따라서 주 52시간제는 보다 근본적인 논쟁과 법적인 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헌법은 노동권, ‘일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주 52시간 상한선을 규정한 새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더 일할 자유’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유지를 위한 노동은 권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향후 노동자들에 의해 위헌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돌이켜보면, 노동시간의 단축은 전통적 노동자계급의 오랜 염원이었고 200년 역사를 이어온 노동운동의 핵심과제였다. 최근 노동과 삶의 조화를 추구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곧 저녁이 있는 삶이 화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들이 우려하고 반발하는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정녕 임금이 줄어듦으로써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을 두려워해서일까?

   먼저 전제할 것은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노동의 단축’이라는 점이다. 노동과 삶의 조화를 위한 노동시간의 단축 그 자체는 당연 이상적인 조치이지만 문제는 그것이 임금의 감소를 수반한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소비이데올로기와 노동과 자본의 불편한 결합으로서 임금노동의 모순이 작용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려면 더 많은 소비가 수반되고,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이 불가피하다. 즉, 오늘날과 같은 소비지상주의 구조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려면,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추가적 임금노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불평하지만 노동에 결합된 자본, 곧 임금소득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임금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노동시간 늘리기에 연연한다. 실제로 최근에도 일부 노동조합은 추가노동을 주요한 협상의제로 삼고 사측을 압박해 왔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노동시간 늘리기 위해 기업을 압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날 노동자들은 노동해방을 원하지 않는다. 노동해방은 노동추방이기에 오히려 두려워하며 더 많은 노동에 몸을 던진다.

   다시 한 번 질문해 본다. 이렇게 많은 노동을 왜 하고 있는가? 강제된 것인가, 아니면 자발적인 것인가? 완전한 설명을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임금노동을 매개하는 욕망의 상호작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우리사회가 소비사회로 진전되면서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대립적인 생산관계에서 상호적인 소비관계로 이전되었다. 소득이 높아지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더 많은 노동자들은 소비를 위해 더 많이 노동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소비이데올로기의 기획에 의한 것이다.

   자본가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상품을 만들고, 노동자는 그 상품을 사기 위해 더 많이 일 해야 한다. 세상에는 상품이 넘쳐나지만 노동자는 항상 돈이 항상 부족하다. 오로지 성장을 해야지만 굴러가는 괴물 같은 경제적 시스템이 만들어 낸 물고물리는 악순환이다. 노동시간 단축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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