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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어른도감>이 완성한 세계에 대한 의심
경유지로서의 여성, 도착지로서의 남성
[205호] 2018년 10월 01일 (월) 송석주 편집위원
   
     

  <어른도감>은 의젓한 조카딸 경언과 난봉꾼 삼촌 재민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 드라마다. 두 인물의 액션과 리액션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묘미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거대한 모순을 뒤덮으려는 장치로 활용되기에 이 영화는 다분히 문제적이다. 그 거대한 모순이란 바로 ‘가부장제로의 회귀’다.

  경언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태어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삼촌 재민을 만난다. 재민은 형의 보험금을 노리고 경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형이 꿈에 나와서 너를 잘 보살펴 달래”라는 재민의 황당한 술수를 똘똘한 경언은 금세 간파한다. 하지만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재민은 경언의 법적 후견인이 되어 결국 형의 보험금을 가로채고 탕진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모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재민은 경언의 돈을 갚기 위해 노처녀 약사 점희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점희를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에 눈이 멀거나 사리에 어두운 인물로 묘사된다. 경언 역시 재민의 사기 행각에 일조하기 때문에 남성의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화되는 캐릭터로 일정 부분 소비된다. 이렇듯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서사에서 여성은 나약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다. 즉 가부장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들은 또래에 비해 성숙하거나 혹은 똑똑한 전문직 여성일지라도 남성에 의해 속박되고 패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경언의 양심선언으로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점희는 재민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 과정에서 경언과 점희의 애틋한 관계맺음이 그려지는 듯 보이지만 영화는 두 여성의 연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가 완성하고자 하는 세계를 위해서는 남성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배신을 당하는 비련의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점희는 영화에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삭제된다.

  한편 재민은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경언과 실랑이를 벌이고 급기야 집을 나가버린다.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잠적해버린 재민은 법원의 감찰에 의해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모든 설정은 경언에게 “어서 빨리 삼촌을 찾아 나서라”는 요구와 압박으로 수렴된다. 끝내 영화는 남성에게 사기당하고 이용당한 여성이 도리어 그 남성을 용서하고 구원하는 서사로 전락하고 만다.

  그 여성이 ‘소녀 가장’이라는 점에 우리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경언은 부모가 없는 어린 여성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항력의 운명에 놓인 소녀 가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집 나간 삼촌, 즉 유사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일밖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학대를 통해 영화가 얻어낸 게 무엇인가. 바로 가부장제로의 회귀다.

  혈연관계라는 점을 제외하면 교집합이라고는 없는 두 남녀는 시종일관 대립하다가 끝내 화합한다. 어른 같은 조카는 아이 같은 삼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며 가족이라는 안전하고도 완전한 합일을 이룬다. 영화는 아빠의 자리에 삼촌을 위치시키면서 안심하듯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이렇듯 <어른도감>은 가부장 없는 여성들이 한 난봉꾼 남성의 가부장 만들기 프로젝트의 도구로 철저히 이용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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