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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별 헤는 밤
별을 잊은 그대에게 전하는 가을밤의 편지
[205호] 2018년 10월 01일 (월) 이충현 여행자
   
     

  가을에는 왠지 시 한편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려서부터 교육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무더운 여름을 끝내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심경의 변화를 이끌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다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시구 하나 있다면 가을이라는 계절이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은 안다. 그것이 허세로 보여질지라도 자신 있게 낭송할 시 한편 정도면 충분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이 구절은 유명 예능프로그램에서 힙합이란 음악적 장르의 옷을 입고 랩이라는 표현으로 대중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암기식 교육은 획일화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를 즐기는 방법이 오로지 독자의 해석에 있다면, 별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이토록 많은 의미를 담아내는지 생각하게 된다.

  오랫동안 인류는 과학과 지식의 대상으로서 별을 탐구했다. 그와 동시에 문학과 감각의 대상으로도 별을 탐구했다. 누군가는 밤하늘을 올려보며 지구 너머 새로운 우주에 대해 매료되었고, 누군가는 별빛이 만들어내는 하늘 그 자체에 매료되었다. 각자는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별을 노래했다. 과학으로 또 문학으로 말이다. 그러나 왠지 가을에는 문학적 소취에 더 끌린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온다.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찾는 일보다 즐거운 건 가장 빛나는 추억을 떠올리는 일이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바라본 밤하늘이 선사하는 감동은 곱절은 크다. 열린 마음 때문이다. 가끔은 별을 보러 여행을 하는 것인지, 여행을 하다 보니 별을 보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별똥별을 보았다며 소란스럽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선명하게 수놓인 은하수를 보며 황홀감에 빠지기도 한다. 혼자일 때는 혼자여서 좋고, 둘이면 둘이어서 좋고, 여럿이면 여럿이어서 좋다. 그 순간이야말로 여행이 선사하는 커다란 선물인 셈이다. 아무리 해도 별을 보는 일은 쉽사리 질리지 않는다. 기분에 따라 감흥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는 행위 자체는 언제나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별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 정도는 누구나 있다. 이집트의 낯선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별에 대한 추억은 짙다. 이집트라면 흔히들 사막을 떠올리지만 홍해를 마주한 시나이 반도의 다합이란 곳은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 마을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여행자들의 시간이 멈추는 곳, 흔히 여행자의 블랙홀이라 불린다. 짙푸른 바다가 여행자의 첫인상을 강탈한다면 밤마다 즐기는 별 구경은 수많은 여행자의 발길을 이곳에 묶는 역할을 한다. 그곳 숙소에는 푹신한 매트가 깔린 옥상이 있다. 그곳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노라면 한명, 또 한명, 또 한명, 그렇게 빈자리가 채워진다.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나지막이 내뱉는 ‘좋다’라는 외마디와 홀짝이는 맥주 마시는 소리가 전부인 옥상에서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옥상에 모인 모두는 감정적 교류를 경험한다. 각자의 지나온 시간들,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놀랍게도, 마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 같은 친밀감을 갖는다. 누가 묻지 않아도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는 사람이 나온다. 나머지는 그저 들어줄 뿐이다. 함께 밤하늘을, 더 정확히는 별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 옥상에 모인 여행자들은 커다란 유대감을 갖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떠날 때가 되면 열 마디 말보다 한 방울의 눈물이 먼저 반응한다. 새로운 여행자가 나타나면 자연스레 별이 있는 옥상으로 안내한다. 새로운 식구를 맞고 눈물로써 보내주는 이 신성한 의식(?)은 별로 인해 존재한다.

 

   
     

  밤하늘을 공유한다는 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공유하는 일이다. 과거 다합에서 만났던 여행자로부터 다시 만나는 것이 염려된다는 말을 들었다. 눈물부터 터질까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합에서 헤어지며 다시 만나자고했던 다짐은 시간이 흘러 오늘이 되었고, 미래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덜컥 현재가 되어 버린 현실이 버거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만났고 그러한 염려를 했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과거로 시간 여행을 다녀왔다. 밤하늘의 별을 함께 즐겼던 다합에서의 시간들이 평생의 추억으로 진하게 남았고, 여전히 강한 유대감으로 묶어주고 있었다.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별은 언어적 교감을 초월하는 특별한 체험이다. 별을 소재로 그처럼 유려한 시를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슴속에 품은 추억과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걸 꺼내어 조심스레 감상에 젖어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감히 오늘 밤에는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노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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