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11.21 수 18:44
인기검색어 : 등록금 인상, 논문표절, 조교 문제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오피니언 >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생명과 노예와 상대적 행복
[204호] 2018년 06월 04일 (월) 대학원 임금노동자 .

  우리 집엔 생명과 대학원에 다니는 노동자 하나와 노예 둘이 살았다. 주 40시간 노동하며 인간답게 살던 나였지만, 한때 일이 너무 많아 11시쯤 집에 들어오는 나날이 지속됐다. 고단한 몸을 끌고 방문을 열 때면 항상 다른 두 친구들이 집에서 잘 쉬고는 있는지 궁금증이 일곤 했는데, 안타깝게도 내 짧은 생각은 현실로 구현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문을 열어봐야 컴컴하기만 할뿐, 다른 둘의 존재는 방에서 정의조차 되질 않았던 것이다. 빠르면 밤 11시 반, 늦으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인생들이었다. 진짜 늦었을 땐 아침 7시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러니 현대판 노예라 부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결국 두 사람 중 아침 8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친구가 노예 1호가 되었고, 9시에서 12시인 친구가 노예 2호가 되었다. 노동권 보장 받는 나는 노동자로 불렸다. 이렇게 사는 마당에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는 노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와 쉬고 있다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그때마다 누구냐고 묻곤 했다. 이에 1호는 "1호 왔습니다."라고 답했고, 2호는 "참 과학자 아니겠습니까."라며 본인의 고된 삶을 조소하곤 했다. 한국에서 과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이 두 노예에게 배웠다. 이게 바로 한국형 참 과학 아니겠나.

  한 번은 약속이 있어 밤 늦게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어쩐 일인지 2호가 자정이 되기 전에 집에 돌아와 있었고, 그는 "어이, 노예 왔는가?"라고 소리치더니 자신이 가장 일찍 퇴근했다고, 자신의 쇠사슬이 가장 가볍다고 자랑했다. "저는 6시에 퇴근해서 놀다 왔습니다만?" 내가 이렇게 답하자 그는 갑자기 시무룩해져서는 "제길, 연구실 정기 회의가 6시에 잡혀 있어서 그땐 퇴근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졌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우리 연구실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가는 폭동이 일어났을 게다.

  잠시 후 자정이 가까운 시간, 갑자기 밖에서 세탁기 돌리는 소리가 거칠게 나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세탁기 돌리는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있다니! 문을 열어보니 1호였다. "빨래는 낮에 하셔야지요!" "그 시간에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퇴근하면 자정입니다." 생각해보니 1호의 지도교수는 주말 출근을 간절히 바란 나머지 토요일 오전 전체 회의라는 기가 막힌 방법을 실행하는 위대한 분이었다. 오죽하면 명절에도 출근해 누가 누가 연구실에 왔는지 확인하지 않았던가. 쯧쯧, 혀를 차긴 했지만 측은지심이 일어 더 질책하긴 어려웠다.

  그러다 빨래 건조대를 두고 두 노예 사이에서 다툼이 일었다. 1호는 빨래가 끝나자 자신이 산 건조대라며 2호에게 덜 마른 빨래를 얼른 걷으라고 명했다. 2호는 빨래를 널 곳을 찾아 헤매며 "빵도 사다줬는데 너무 하십니다."라며 툴툴거렸다. 영수증을 살펴보니 빵값은 1,500원이었다. 석사 기준으로 등록금을 떼고 나면 인건비가 50만 원 남는데, 주 80시간 노동하는 건 보통이고 여기에 헬조선 버프랑 친구 좋은 게 뭐냐 찬스를 끼얹으면 대학원생 시급은 대충 500원쯤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1시간은 일시켜도 되겠습니다?" 내가 영수증을 보며 1호에게 낄낄거리자, 그는 먹은 빵 다 뱉어내겠다고, 지금 일시킬 거면 실험 1시간 해달라며 짜증을 냈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한태식 | 편집인 : 이철한 | 편집장 : 김세연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우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