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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켜라
굴둑에 올라간 파인텍 노동자
[204호] 2018년 06월 04일 (월) 정 택 용 사진가
   
 

  전태일 열사 47주기 하루 전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 작년 11월 12일 아침, 잠에서 깨어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몇 시간 전에 그들이 또 굴뚝 위에 둥지를 튼 소식을 봤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높이 굴뚝 위. 집에서 직선거리로 1.6km 떨어진 곳.

  파인텍 노동자. 아직 이 이름은 낯설다. ‘스타케미칼’이나 ‘한국합섬’이 여전히 입에 익은 이름이다. 박준호와 홍기탁. 두 명의 노동자가 굴뚝 주위를 감싼 사다리를 타고 힘겹게 올라갔다고 했다.

  ‘한국합섬’일 때 처음 만난 이들은 다른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상경투쟁 중이었다. 2006년 공장이 기계를 멈추고 이듬해 파산할 즈음이었나 보다. 코오롱, 오리온, KEC 등 구미엔 투쟁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 곳에 갔다가 두세 번 그들이 지키고 있던 한국합섬 공장에 갔던 것도 같다. 딱 그 정도였다. 한국합섬이 있던 구미까지는 집에서 210km. 그 거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스타케미칼’일 때 다시 만난 이들은 굴뚝 위에 올라가 있었다. 거리는 멀어도 2010년 스타플렉스라는 기업이 한국합섬을 인수해 공장 이름을 스타케미칼로 바꿨다는 소식 정도는 들려왔다. 한국합섬 때부터 오래 싸워 왔는데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모기업 스타플렉스는 스타케미칼을 청산했다. 적자 누적 때문이라고 했지만 노동자들은 ‘먹튀’ 의혹을 제기했다. 스타케미칼이 공장에서 철수한 다음날 차광호가 공장 안 45m 굴뚝에 올라갔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차광호가 하늘에 있을 때, 한국합섬일 때보다는 더 자주 스타케미칼을 찾아갔다. 홀로 가기도 했고 때론 밀양 할머니들과, 때론 투쟁 3,000일을 맞아 전국을 돌던 콜트콜텍 노동자들과도 갔다. 지금 하늘에 올라 있는 박준호, 홍기탁이 그때 우리를 맞아 줬다. 끼니 때 가면 밥을 차려 줬고 커피를 타 줬고 쉴 곳을 챙겨 줬다. 하늘에 있는 차광호를 챙기는 것도 그들 몫이었다. 차광호는 408일 만에 내려왔다.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이라고 했다. 있어서는 안 될 기록이었다. 고용 보장,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 생계 및 생활 보장을 약속 받았고, 고용은 구미가 아닌 ‘평택 지역 이하’에 신설법인을 세워 승계하기로 했다.

  2016년 1월 충남 아산에서 파인텍 공장이 가동됐다. 임금은 최저임금(당시 6,030원)+1,000원. 하루 8시간 노동 외 잔업은 주지 않았다. 연고도 없는 아산에서 지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단체협약 체결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2016년 10월부터 파업에 들어갔고 5명만 남았다. 회사는 공장에서 기계를 들어냈고 임대기간을 연장하지 않아 다른 사업체가 파인텍 자리에 들어왔다.

  이런 사정도 당시엔 잘 몰랐다. 파업한다는 얘기를 듣고도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 듣다가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정책에 항의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할 때, 그 촛불의 광장 한편에 파인텍 노동자들도 천막 하나를 치고 탄핵 국면을 함께 맞으면서야 사정을 좀 알게 됐다. 그들이 또 하늘에 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래서일 것이다. 한국합섬을 아는 사람조차 파인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무심한데 보통 사람들이 알 리 없다.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켜야만 고립에서 벗어나는 이 역설. 하늘로 올라가서야 그나마 그들 소식이 조금 알려졌다.

   
     

  차광호가 굴뚝에 올라갔을 때 밑에서 밥을 준비해 올리고 똥오줌을 받아 내리던 박준호와 홍기탁. 이젠 처지가 바뀌어 차광호가 밑에서 두 사람의 끼니를 준비해 올린다. 고공농성은 하늘에 오른 사람만 하는 싸움이 아니다. 땅에 남은 사람들도 몸을 축내며 한뎃잠을 자야 하고 자신들의 추위와 배고픔보다 올라가 있는 사람들의 그것에 더 극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 날마다 문화제를 준비해 하늘의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해야 하고 그들의 싸움을 바깥에 절실히 알려야 하는 것도 남은 자의 몫이다. 그런 날이 200일 넘게 흘러 왔다. 굴뚝에서 멀지 않은 집에서 가끔씩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는 사람에게는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을 낀 그 200일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폭이 좁아 몸을 일자로 누일 수도 없는 공간에서 200일을 버텨온 그들에게는 얼마나 긴 시간들이었을까. 노동자들이 408일+200일을 버텼다면 회사도 같은 시간을 버텼다. 같은 시간을 버텼지만 양쪽의 시간이 흘러간 모양은 같지 않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 정도는 만인에게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두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도 앞당겨질 것 같다.

  촛불로 세상을 바꿨다지만 노동자의 세상은 바뀐 게 없다. 첫 공장은 파산했고 두 번째 공장은 청산 뒤 철거됐다. 세 번째 옮긴 곳도 사라져버렸다. 청춘을 바쳐서 일했는데 결국 돌아갈 곳이 하늘밖에 없다면 지난 촛불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몇 개월 일찍 정권 하나 바꾸려고 그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뜨거움이 여전히 간절하다. 노동자가 일터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소박한 꿈을 함께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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