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6.18 월 13:21
인기검색어 : 논문표절, 조교 문제, 등록금 인상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안내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학술 서평 > 서평
     
[신간서평]'평범한 악행자' 되는 법
김선욱, 『한나 아렌트의 생각』, 한길사, 2017.
[203호] 2018년 04월 09일 (월) 김세연 편집위원
   
 

   홀로코스트의 주모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최종 재판에 넘겨지기 직전 정신감정을 받았다. 그를 감정한 의사와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예루살렘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아이히만이 외설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되고 있던 소설 『롤리타』를 읽고 ‘아주 불건전한 책’이라며 화를 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미치광이나 악마가 아니라 자상한 가장이자 상식적인 국가 공무원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시 대학 강사였던 한나 아렌트는 미국의 『뉴요커』지 특파원 자격을 얻어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게 된다. 그곳에서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관에게 “국가가 자신에게 명령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를 지켜본 아렌트는 악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자비함이 아닌 ‘무사유’와 ‘평범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설파한 ‘악의 평범성’ 테제의 기원이다.
   아이히만과 최근 ‘미투(me too)운동’ 가해자들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들은 ‘딸바보’ 아빠이자 다정한 남편이고, 수많은 단원들을 거느리는 탁월한 지휘관이며,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충직한 공무원이었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성폭행에 대해 ‘18년 동안 이어져온 관행’이라고 설명하고, ‘그것이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는 줄을 몰랐다’고 말한다. 자신의 폭력성에 대해 자각하지 못했다는 고백은 아마도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별다른 악의 없이 ‘나쁜 조직문화’에 성실히 적응했을 따름이다.
   아이히만이 자기검토가 결여된 채로 투철한 준법정신을 발휘했던 것처럼, 미투 가해자들 또한 반성적 사고 없이 자기가 속한 세계의 논리에 충실했다. 아이히만이 나치의 법을 따랐다면 미투 가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에 복무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의 저자 김선욱은 “생각 없이 성실하게 살아가면 우리는 성실한 악행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유를 멈추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게 되는 지점에서 ‘절대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를 보고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떠올린 시점부터 이 책이 기획되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접해보면 특정 사안에 대한 논쟁이 주를 이루는 텍스트는 아니다. 책에서는 아렌트의 사상을 개괄하는 동시에 더 생각해볼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저자는 현실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함께 사유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김선욱의 해설에 따르면 아렌트는 우리에게 자신의 철학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으로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져 자신의 관점을 수정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번 고민해보자. 지금 나는 어떤 문화 속에 스며들어 있는가. 텅 빈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서 악한의 길로 빠져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아렌트와 함께 내가 속한 세계의 ‘평범한 악’들을 판별해볼 차례이다.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한태식 | 편집인 : 이철한 | 편집장 : 김세연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서영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