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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기억의 이유
다시 4월, 세월호
[203호] 2018년 04월 09일 (월) 정 택 용 사진가
   
     

   4년이 지났다. 배가 가라앉은 지. 그 사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짧게 표현했지만 한 명의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 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동안 안 그래도 역동적이라는 이 나라엔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을 것인가. 그걸 보고 듣고 겪어 온 우리들의 기억과 감정은 그 격변 속에서 또 얼마나 날카로워졌을까. 혹은 무뎌졌을까.
큰 배가 서서히 가라앉고 많은 사람들이 팽목항으로 달려갔을 때 가지 않았다. 다른 참사의 현장, 765kV 송전탑이 세워지던 밀양에 자주 가던 때였다. 연이은 참사에 단련됐는지 아니면 또 일어난 참사를 외면하고 싶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사고현장을 찾아가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참사의 흔적은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사 뒤 보름 정도 지나 다른 일정으로 찾았던 청와대 근처에서 마침 항의하러 상경한 유가족들을 마주친 뒤 자의반 타의반 세월호 관련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게 됐다.
   여러 사진 찍는 사람에게 단원고 학생들의 빈 방을 기록으로 남겨달라는 요청을 받고 처음 어느 학생의 집을 방문했던 날의 기억은, 그 무거움은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 긴장해서 그 집 주위를 배회하다가 겨우 들어가서는 작은 소리라도 낼까봐 몸을 돌리는 일조차 신경이 쓰였다. 책상 서랍을 열어 찍을 물건들을 펼치면서 이렇게 만져도 되는 것인지, 함부로 찍어도 되는 것인지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거실에서는 떠난 학생의 부모가 구술 기록을 남기며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기록을 하는 사람의 울음소리도 이어졌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첫 촬영을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온 뒤에도 계속되었던 침묵을 기억한다. 찍으러 간 사람이나 방을 보여준 사람이나 참사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모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두 번째, 세 번째 촬영을 가면서 달라졌다. 몇 달이 지나가고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유가족들이 비록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겠지만 적응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방을 찍을 때의 마음도 점점 가벼워졌다. 방을 찍을 때뿐만 아니라 단원고에서, 안산 분향소 앞 사무실에서,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서, 팽목항에서, 목포신항에서, 그분들이 연대하는 여러 장소에서도 참사 초기의 분위기와는 달라진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웃음소리도 자주 들을 수 있었고 농담도 오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첫 빈 방 촬영의 무거움을 다소 잊게 해주는 위안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변화가 계속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고 지켜보는 누군가에겐 안심과 위로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짐작하건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시간의 흐름 뒤에 생기는 변화는 조금씩 잊어가는 것이 아닐까? 미수습자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유가족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참사가 잊히는 일일 것이다. 참사가 일어난 다음 해 단원고 교실을 찍으러 갔을 때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관중석 계단 단면에 노란 세월호 리본을 그려 놓은 걸 찍은 적이 있다. 이듬해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2년간의 활동을 [세월호 참사 2주기, 416프로젝트-망각과 기억]이라는?7편의 옴니버스 영화로 세상에 내놓을 때 그 사진을 요청해서 포스터용으로 제공했다. 나중에 봤더니 그 사진을 찍은 뒤 노란 리본이 검은 칠로 덮여 사라진 모습을 찍은 사진을 원래 사진과 아래위로 배치해 포스터로 만든 걸 봤다. 서서히 잊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단원고가 적극적으로 잊으려 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 같아서 씁쓸했다. 학생들이 떠나고 남은 교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이런 작은 상징조차 남아있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찾지 못한 승객이 남아 있다. 세월호 선체는 아직 똑바로 서지 않았다. 구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구조하지 않았다. 아직 왜 침몰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세월호의 진짜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누군가 혹은 어떤 무리가 세월호 조사 활동을 치밀하게 방해했다.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기억 속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끌고 와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곳곳의 노란리본 공작소에서 수많은 시민이 모여 리본을 만들고 유가족들이 열심히 나누는 것도 같은 이유다. 떠난 자식의 이름을 모르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서 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304명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목적이 아니다. 세월호, 4.16 이전과 이후는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304명은 경기도 안산의 304명이 아니다. 세월호 이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304명은 영원히 ‘누구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그 자리엔 다시 아파트가 들어섰다. 건물과 건설현장의 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쉬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들이 지난 4년을 이끌어 온 것 같다.
   검게 지워버린 단원고의 노란 리본을 언젠가 찍어야지 생각했지만 게을러서, 계속 잊어서 못 찍었는데 얼마 전에야 3년 만에 찍었다. 리본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두 장의 사진을 볼 때마다 기억의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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