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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미투 운동’, 남성은 남성과 싸워야 한다
[203호] 2018년 04월 09일 (월) 박 우 성 영화평론가
   
                              △ 사진출처 : ClipartKorea
   

   대체 왜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일까? ‘미투운동’에 한마디 보태지 못해 안달이 난 듯 참견하는 남성들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이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남성들이여, 우리 입을 다물자” 정도뿐이다. 피해 여성의 폭로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자기본위로 해석하거나, 잰 채하며 평가할 자격은 남성에게 없다. 아무리 다르게 말해도 그것은 2차 가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 사실상 그것은 강간문화다.
   장면 하나.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에서 가수이자 배우 설현이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누굴 때렸나? 도박을 했나? 음주운전?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녀는 그토록 멸시당하고 있는가. 모 잡지와의 인터뷰 때 한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장애인 비하? 동료 폄훼? 자아도취? 대체 무슨 발언이었기에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확인했다. “여성에 관한 이슈에 관심이 생겼어요. 공부도 하려고요.” 이게 다였다. 여성이 여성의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며 여성을 배우겠다는 태도가 대체 왜 비난거리가 되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물론 그때 설현이 말한 이슈란 ‘미투운동’을 지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장면 둘. 전 충남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와 관련해 어느 라디오의 중년 남성 진행자는 원래 성폭력 사건이 구속 사유가 되는 건 드물다며 정황을 설명했다. 그 남성은 평소 “쫄지마!”를 외치며 재벌과 정치인의 치부를 거리낌 없이 들추기로 유명했다. 이상한 것은 그가 지난 정권 권력자들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었을 때, 특히 재벌 3세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한국의 법체계 전체를 거침없이 의심하며 비판했던 터라는 점이다. 이 입맛대로 색깔을 달리하는 “쫄지마!”의 진심은 무엇인가. 그는 법이 권력 편이라는 사실을 ‘쫄지 않으며’ 잘 안다. 하지만 그 권력이 진보와 보수를 떠나 남성의 것이라는 사실은 ‘쫄면서’ 모르는 척한다. 성범죄를 구속하지 않는 한국의 법체계는 그에게 의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면 셋.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이기도 했던 전 충남지사가 상습적인 성폭력 가해자로 알려졌을 때 한국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리고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다. 문제는 피해자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던 여론도 그 사이 제법 변한 듯 보인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밑에 달린 다음과 같은 댓글은 참담하다. “막말로 여럿차례해서 죽기보다 싫었다면 가지말았어야지! 지발로 오피스텔을 왜 걸어들어가?? 도저히 저 여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됨! 막말로 합의했는지 안했는지 우째아는데?” 아주 놀랍게도 비문으로 가득한 이 댓글에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딱히 놀랍지 않게도 그 사람들 대부분은 남성들이었다.
   장면 넷. BBK 저격수로 홍역을 치룬 전직 국회의원이 최근 극적으로 사면을 받고 정치인으로서의 새출발을 꿈꾸던 차였다. 그때 그의 성희롱을 고발하는 피해자가 나타났다. 그 스타 정치인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폭로 내용과 엇갈리는 그날의 흔적을 소상히, 그리고 당당하게 밝혔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다. 그의 신용카드 기록이 그가 아닌 피해자를 편들었다. 진실공방이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유력한 정치 팟캐스트의 패널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뜬금없게도 그는 사건을 보도한 언론매체를 탓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최초의 보도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사태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성희롱 자체가 없었다면 이 모든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열을 올리며 모르는 척했다. 혹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구체적 정황을 직시하지 못한 매체의 윤리적 태도에는 무지한 척 연기했다. 참고로 최근 그는 공중파 라디오 진행자로 발탁되어 떳떳하게 맹활약 중이다.
   강간문화(rape culture)란 여성 대상의 성폭력 사건을 용인하거나 부추기는 환경 일체를 일컫는다. 성폭력 사건을 농담이나 오락으로 소비하거나,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피해자의 품행을 문제 삼거나, 다른 범주의 가치로 성폭력을 희석시키거나, 사생활 문제라며 성폭력에 침묵하거나, 남성적 본능이라며 성폭력의 불가피성을 운운하는 등이 강간문화의 대표적 경향이다. 우리는 앞서 열거한 장면들의 또 다른 판본을 밤을 세워가며 나열할 수 있다. 남성들의 입을 통과하면서 ‘미투운동’을 공부하겠다는 여성 가수의 의지는 인신공격의 근거가 된다. 정치적 진영 논리가 젠더 감수성을 짓누른다. 피해자의 품행이 강조되며 가해자의 폭력이 희석된다. 사태의 본질과 먼 논란이 이슈화되며 가해자의 억울한 상황이 부각된다. 문제는 이 입들이 비정상적 남성들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남성들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런 말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이 평범한 비정상이 강간문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미투운동’은 짧고 간단한 이슈가 아니다. 이름은 사라질지 몰라도 기저에 깔린 운동성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지치지 않고 더더욱 강하게 지속될 것이다. 간헐적으로 비가시화될 수 있을지라도 차별이 존재하는 한, 아니 인류가 존속되는 한, 이어졌고 이어질 수밖에 없는 끈질기고 집요한 운동인 것이다.
   이제 남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남성들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대신, 여성을 위험에 빠트리는 자기 내부의 여성혐오를 각성해야 한다. 동시에 그런 폭력성을 공유한 남성 동료들과의 부당한 연대와 기꺼이 대결해야 한다. 더불어 자신을 향한 여성들의 불만어린 시선을 당연하게 수용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칫 그 강간문화 안에서 자신 역시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 카드를 소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침을 튀기는 발언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치와 안위까지 흔드는 실존적 실천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남자다. 혹시 ‘미투운동’이 우리를 박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박해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옳은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대개 박해당하는 쪽이 아니라 박해하는 쪽에 서 있다. 그러니 제발, 입을 다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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