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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학문 공동체?
[202호] 2017년 11월 06일 (월) 배고픈 수료생 익명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박사수료생이다. 살면서 ‘공동체’라 불리는 여러 집단에 속했던 나는 공동체의 순기능을 경험했지만 바로 그 이름으로 가하는 억압을 겪기도 하며 회의감을 느껴왔다. 그랬기에 질문과 의심이 미덕인 대학원에서 나는 진심으로 자유로웠고, 거기서 일종의 ‘차이의 공동체’ 같은 것을 상상하기도 했다. 운 좋게도 나는 대학원에서 ‘학문공동체-됨’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거의 없다. 공동체가 슬로건으로만 존재하거나, 슬로건으로서의 공동체조차 사어(死語)가 돼버린 것이 대한민국 대학원 집단의 현실인 것 같다.

  학문공동체-됨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기에 앞서, 대학원 사회에서 친밀함과 유대감을 경험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서글픈 사실이 뇌리에 스친다. 소수와의 친분을 제외하면, 대다수 사람들과의 관계란 빈약하기 그지없다. 관찰과 평가가 넘치는 데 비해 서로에 대한 인격적인 앎은 메마르다. 서로의 삶과 내면에 개입할 틈은 잘 열리지 않는다. 때로 하나의 존재는 열이기도 백이기도 하므로, 친구는 적어도 좋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상황에서 ‘학문공동체-됨’, ‘공동체문화’를 발견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대학원 사회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언제나 마를 줄 모르는 말의 강을 건너, 함께 책임지기 위해 머리와 마음을 맞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 유폐되기보다, 우리들 자신이 대학원 사회·문화를 매순간 주조하고 있다는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은 어떠한가.

  무엇 때문일까? 무관심과 이기심을 이유로 들기는 쉽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의 풍경을 떠올리면 위 두 마음이야말로 간단치 않다. 쏟아지는 과제, 밤을 새도 모자란 읽을거리와 사유할 시간. 일과 학업을 병행하려니 항상 시간에 쫓기고, 몸을 돌보기 위해 운동할 기력조차 없다. 배움의 과정에서 자꾸만 낮아지는 자존감은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대학원에서 자기정체성이 희미한 가운데, 토론하고 논쟁하는 동학(同學)은 대하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존재가 돼버리기도 한다. 대학원이 ‘내집단’이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품고 대학원에 입학한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며 공부할 미래가 내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미래가 없으니 타인과 오늘을 나눠 살기 어렵다. ‘낭만’에서 ‘노동’으로, 학문하는 삶의 인식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은 홀로 부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동체가 우리 혹은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졌다가 스러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스러지며 만들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영 잃은 것도 아니요 확고히 쥔 것도 아닌 채로 때때로 있거나 없는 것. 그러한 공동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 가능한 때는, 차이를 공통적인 것이 되게 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 내게 없던 미래가 타인의 얼굴에서 발견되더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는 오늘의 협력관계 안에만 있는 것이다. 대학원 사회 내 성평등 문화 만들기, 기업화된 대학에서 연구-노동환경 바꿔나가기 등, 함께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학문공동체란 단지 ‘학술취미’를 공유하는 집단이 아니다. ‘학문적 관심사’의 차이가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게 하는 것. 인문학을 공부하는 우리가 그토록 들여다보는 인간과 사회, 문화가 현재 우리 자신들의 삶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 함께 주시함으로써 ‘공부하는 삶’을 같이 구축해가는 것. 그것이 학문공동체-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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