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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숙의 밀양
[202호] 2017년 11월 06일 (월) 정택용 사진가
   
     

  4년 전 5월 어느 새벽, 인적이 없는 밀양 산속에서 할머니들은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전 직원들한테 포대에 싸여 실려 나왔다. 밀양 곳곳에 세워지는 765kV 송전탑을 막으려는 안간힘이었다. 그 송전탑으로 흐르는 전기를 쓸 사람들은 대부분 산속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 관심도 없는, 밀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수도권 사람들이었다. 날마다 산속에서 들에서 논에서 갖은 치욕을 당하면서 괴물 같은 송전탑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송전탑들은 들어섰다. 사시사철 자신의 집 마당에서 자신의 논과 밭에서 그 거대한 쇳덩이를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밀양 주민들은 송전탑의 전깃줄이 이어진 것처럼 연대의 끈도 이어졌다고 말하는 한편 그 이어진 전깃줄을 따라가면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원전이 있었다. ‘원전’, ‘원자력발전소’가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자신들의 고통의 시작은 ‘핵발전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반대 활동에서 탈핵운동으로 넘어가게 된 과정이다.

  이후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탈핵과 탈송전탑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보고 듣고 배웠다. 고리·월성·울진·영광 핵발전소는 물론 경주 핵폐기장, 신안성변전소를 방문해 속을 들여다봤고 변전소 예정지와 핵발전소 근처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을 함께 나눴다. 녹색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생태의 소중함에 대한 느낌만 막연히 가지고 있다가 더 구체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그날 밀양 산속에서 목격한 그 충격적인 모습 때문이었다.

  지난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을 통해 ‘3개월에 걸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정부는 그 결과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공론화위가 활동한 3개월 동안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한 탈핵탈송전탑 원정대’를 만들어 전국 22곳을 다니며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호소하고 자체 제작한 탈핵 소책자 3만 2천 부를 배포했다. 공론화위의 2박 3일 합숙토론이 종료된 뒤 결과 발표까지 4박 5일 내내 서울에서 선전전, 108배,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했다. 그런 주민들에게 촛불로 당선된, 믿었던, 밀양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이야기를 들어줬던 대통령의 ‘조속히 재개하겠다’는 말은 크나큰 실망이자 허탈함이었다.

   
   

  애초에 신고리 5·6호기 폐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사회적 합의’, ‘공론조사’, ‘숙의민주주의’, ‘시민참여단’ 긍정적인 단어가 앞으로 튀어나오고 대통령은 공약을 폐기했다. ‘인적이 드문’ 밀양 산속 송전탑 반대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적이 많은’ 핵발전소 주변 거주민들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신고리 5·6호기와 함께 평생을 보내야 할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은 시민참여단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또 어쩔까. 지역과 당사자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1958년 원자력법 통과 이후 시민들은 60년 가까이 핵발전이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깨끗한 에너지라는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정보 환경에 노출돼 왔다. 그런 상황에서 3개월, 2박 3일, 합숙토론 이런 것들은 결코 ‘숙의’가 될 수 없었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겐 이런 상황이 너무나 복잡하다. 믿었던 사람이 자신들의 바람을 공약으로 내며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찍었고 당선이 됐으니 그 공약을 지킬 일만 남았다 여겼는데 갑자기 공론화위에 맡겨버렸다. 답답한 일이었다. 받아들이고 말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공사 재개가 결정됐다.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는 토론할 권리를 가지고 결과에 승복할 때 완성된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당사자들에겐 한 마디 한 마디가 위로는커녕 승복의 강요로만 느껴진다.

  고리핵발전소 반경 30km 내에는 382만 명이 살고 있다. 신고리 5·6호기가 건설되면 3.5km 정도 거리에 10개의 핵발전소가 다닥다닥 붙은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 지역이 된다. 후쿠시마의 경우엔 반경 30km 내에 17만 명이 살고 있었다. 사고 뒤 반경 60km 내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한다. 고리핵발전소가 보이는 해수욕장에 가면 여름에 수많은 피서객들이 물놀이와 낚시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영화 ‘판도라’의 탈출 장면과 겹칠 수밖에 없는 참 기묘한 모습이다. 이건 집단적으로 요행을 바라는 사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핵발전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의 문제도 아니다. 진실의 문제, 가치의 문제, 윤리의 문제다.

  ‘나를 죽이고 원전을 세워라.’ 그날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공사 재개 발표를 들었던 밀양 할머니의 울분이다. 큰 실망을 하며 밀양으로 돌아갔지만 송전탑이 세워지자 반드시 뽑아내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그들은 새로 일어나 끈질기게 싸우자고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공론화위의 발표 전에 햇살이 포근한 밀양의 품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평화의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비록 한참 멀어진 꿈이 됐지만 우리는 밀양에서 지난 12년 동안 벌어진 일들을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해야 한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해. 무책임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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