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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한 밤
[201호] 2017년 09월 18일 (월) 박상수 시인
   
 
     

  바람에 이마를 맡겼어 낮아지는 먼 바다와 뒤섞이는 눈 결정들의 소용돌이 안에서, 다섯 둘 그리고 하나 장갑 속 손가락이 사라지고 있었지 한쪽 어깨부터 무너지고 있었어 너무 모자라서 늘 많은 걸 증명해야 했지 더 많은 걸 증명하려고 나는 모든 걸 미워했어, 밤, 가로등, 교차로의 자동차, 이렇게 작은 사람들, 깊이 감춰둔 흑단 상자 속 얼룩진 그림책이 펼쳐지고, 집이 올라오고 굴뚝에선 연기가 흘러나오고, 그런 풍경은 책에서만 본 것 같은데, 빈티지 헌팅캡에 파이프 담배를 물고 영원히 눈보라 하늘을 올려다보고만 싶었지 입술 빛이 흐려지고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말은 무서운 말, 어디까지가 모든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발밑이 늘 허공이었어요, 희미한 나, 발끝만 겨우 남은 나, 건물 꼭대기마다 얼음 눈이 쌓이고 있구나 날개를 접고 끝내 날지 못하더라도, 나는 지금이 영원하길 바라는 사람 하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지 그 밤 속을 혼자 들여다보고 있었어.

 

<시인소개>

2000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으로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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