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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잘 내리는 스님’의 운치 있는 잡담
원철스님, 『스스로를 달빛삼다』, 휴, 2017
[201호] 2017년 09월 18일 (월) 김세연 편집위원
   
 
     

  『스스로를 달빛삼다』는 법정스님의 대를 잇는 불교계 대표 문장가로 알려진 원철스님의 산문집이다. 한때 ‘커피 잘 내리는 스님’으로 통하기도 했던 원철스님은 산에서 머물던 마음을 도시로 실어 나르고 도시의 화두를 다시 암자에 전하며, 수행과 속세의 삶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도를 닦는다고 할 지라도 의식주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더불어 대중 생활을 하면서 의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29쪽)는 담담한 문장은 원철스님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마흔다섯 개의 삽화들은 ‘걸음 따라 나를 되짚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해와 달, 산과 바람, 사람을 살게 하다’라는 소제목 하에 세 갈래로 나뉜다. 소제목에서 짐작 가능하듯이 각각은 자기수양, 타인과의 관계 문제, 자연과 공간에 천착한 이야기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목침 떨어지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다」는 산문집 전반의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는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목침에 대해 ‘비로소 자신이 출가했음을 알려주는 첫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수행자들은 일반인과 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을 것 같지만, 그들 역시 나무 베개는 딱딱하고 불편하다. 절에서 신참 행자에게 목침을 사용하게 하는 데는 생각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수행자는 완전히 잠에 빠져 혼수상태가 되는 일이 없이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목침을 처음 만났던 날의 생경한 느낌에 대해 서술한 뒤, 법담 하나를 소개한다.

  고서에 따르면 당나라 남악문하의 천화도오 선사는 한평생 즐겁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임종을 앞두고 괴로운 기색을 드러낸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제자가 이유를 물었더니 선사는 벌떡 일어나 목침을 집어던질 듯한 모습으로 “너는 그때가 옳다는 것인가? 지금이 옳다는 것인가?”(39쪽)라고 되묻는다. 이것이 바로 ‘시비중도是非中道(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의 법문이다.

  ‘시비중도’의 법칙은 산문집의 컨셉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꼰대급’이라는 자평(自評)이 무색하게 저자는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드러내는 법이 없다.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제시하거나 엄숙한 깨달음을 강구하기보다는 뇌리에 떠도는 단상, 내면에서 길러 올린 사유들을 흩뿌려놓을 따름이다. 언뜻 개연성을 알 수 없는 일화들의 나열은 그러나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스님 작가에 대한 우리의 노멀한 기대(위로와 교훈을 잔뜩 안겨줄 것만 같은)를 배반하고 삶의 복잡한 셈법에 대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힐링을 위해 명상수행센터를 찾고 템플스테이와 함께 참선을 해도 잠시 그때뿐”(91쪽)이라며 치유 불가능한 젊은이들의 아픔을 대책 없이 공감하는가 하면, KTX 덕분에 신통력(축지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능청을 부린다.

  책에서는 산간의 작은 일상이 종교적·인문학적 지식으로 채색되고, 관성적인 도시 풍경이 관찰자의 섬세한 필치로 생명력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교에 관심이 없거나 갖가지 ‘고나리질’에 지친 청년들 역시 부담스럽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주거니 받거니 잡담을 나누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면, 손끝에 풀물이 베듯 은근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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