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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의 정신
헤겔의 정신과 오늘날의 금욕주의에 대하여
[201호] 2017년 09월 18일 (월) 한은석 철학과 대학원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라는 헤겔의 말처럼, 분명 우리는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리 고귀한 이상이라 하더라도, 정동이 저열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그것은 저 먼 곳에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는, 우리는 존재한다. 용납할 수 있든 없든,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간에 그냥 그렇게 있다. 세계는 주관에게 자기를 자신으로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것만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기에 헤겔은 정신의 성숙과 발전은 아주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기의식과 세계 사이의 괴리와 간극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그 자리에 멈춰 있거나, 아니면 자신을 무너뜨리며 계속 나아가던가. 다시 돌아가는 방법 따위는 없다. 헤겔은 자기의식이 비로소 이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금욕주의와 회의주의의 주관성을 부정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제 아무리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은 것을 받아들이고, 주관의 믿음을 고수하려 한다 해도 결국 현실의 벽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자기의식을 부정하고 이성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물론 헤겔에게는 매우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아가는 것보다 멈추는 것을 선택했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편찬위원회는 2016년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비롯, 제1 세계 내에 창궐하는 극우 파시즘 속에서 헤겔이 말하던 정신의 도야로서 자기의식에서 이성으로의 과정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진실 앞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대신 편안히 틀어박혀서 안존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도피의 수단으로 집단의 특수한 믿음으로 지탱되는 가짜 뉴스들을 택했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파시즘으로부터 그나마 벗어났다는 점에서 한국은 영미보다 운이 좋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더 특별할 것은 없었다.

  동료 시민을 정당하게 모욕하고,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가부장제의 젊은 대리인들은 학계가 지성의 이름으로 쌓아올린 성과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젠더-이퀼리즘이라는 허구의 이념을 만들어냈다. 가부장제의 낙오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이념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외국, 전공자, 유행을 만들어내며 믿음을 유지하려 했다. 물론 이 허구의 이념은 헤겔이 장담했던 것처럼 이성 앞에 순식간에 무너졌지만 극복된 것은 어디까지나 젠더-이퀼리즘이라는 허구의 이념이지 가부장제의 젊은 낙오자들이 아니었기에 이들의 비열한 목소리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계급, 지역, 학벌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비열한 계승자들의 목소리들은, 탈-진실의 요새에 틀어박힌 금욕주의와 회의주의의 자기의식들은 더 이상 철부지들의 장난으로 좌시하기 어려운 문제다.

  과연 탈-진실(post-truth)은 정신의 도야 속에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이 문제를 적확하게 분석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200년의 격차가 있는 철학자 헤겔의 작업보다는 좀 더 최근의 성과들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다만 헤겔에게서 한 가지는 확실히 장담할 수 있을 것이다. 박봉에 시달리는 사강사 생활 속에서도 절대정신에 대한 학문적 야심과 계획을 놓지 않았던 청년 헤겔은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신은 좌절하고 돌아갈지언정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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