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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장시기 교수님과의 기억을 시작하며
[201호] 2017년 09월 18일 (월) 구자룡 2011 편집장
 
 

  그는 내 결혼식의 주례선생님이었다. 주례 같은 건 절대 보지 않겠다던 그는 결국 ‘내 마음대로’라는 조건을 걸고서야 승낙했다. 주례사는 온통 곧 다가올 선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와이프와 함께 사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러시려고…’하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와 고개를 아래로 살짝 젖히니 단상 너머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두 손이 보였다. 떨리는 손을 뒤로 살며시 감추고 주례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왠지 모를 수줍음을 느꼈다.

  그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탈근대’이다. 그의 글과 논문에서는 물론이고 그의 수업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이 단어는 마주한 상대와는 무관하게 무한 반복적으로 귓가에 맴돌게 된다. 그와 함께 술자리를 한번만 해본다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탈근대’의 주술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서둘러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하여 화제의 전환을 시도한다. 이에 실패하면 볼일 없는 화장실을 급하게 가는 척 비어있는 다른 아무 자리에 앉아서 무방비 상태의 애꿎은 이를 ‘탈근대’의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취한 척 눈의 초점을 살짝 흐릿하게 한 상태에서 이 술자리가 끝나기를 마음 속 깊이 기도하고 있다가 ‘갈까’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출입문을 박차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할 만큼 그는 ‘탈근대’를 사랑했고 즐겨 노래했다.

  그는 또한 참 고집스럽게도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기도 했다. 많은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해 지속적이고 꾸준히 진보적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형태로 참여하였다. 학내 문제에 대해서는 멀리 2005년에는 사회학과 강정구 교수님의 일에 학자적 양심으로 함께 나섰고 최근 2015년에는 총장 선출을 둘러싼 학생들의 싸움에도 역시 교수이자 동문으로 함께 나섰다. (또한 내 개인적으로는 2004년 (학부)총학생회장의 석연찮은 제적 사태에 유일무이하게 함께 나서준 교수님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진보적 학자이자 실천가로서 대학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랬던 그가 2017년 7월 12일 아침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나간 세월 앞에 미친개 마냥 미쳐버릴 수도 있어… 하지만 결국 끝이 다가오면 그냥 가게 놔둬야만 해.”라는 어떤 영화 대사의 한 구절처럼 이곳에서 그만 가려는 그를 사람들은 각자들 각각의 방식으로 보내고 있다. 그의 딸 다영이는 추모식에서 바람구두를 신고 아프리카로 떠난 아빠를 보내며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고, 추모식이 끝나고 무대로 올라온 허리 굽은 한 노(老) 교수는 환하게 웃는 제자의 사진 곁에서 한참을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파고다 어학원에나 가라며 같이 낄낄대던 동학(同學)은 먼저 간 친구에 대한 분이 아직도 덜 풀렸는지 씩씩대며 오늘도 녹두 사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삼가 故 장시기 교수님(1961-2017)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 장시기 교수의 젊은 시절 모습. 장시기 교수는 『동국대학원신문』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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