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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광화문 시대’ 프로젝트 - 정치학적 독해
[201호] 2017년 09월 18일 (월) 하상복 정치학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대통령의 연설에서 청와대와 광화문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의미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 청와대가 권위주의 정치를 표상한다면, 광화문은 수평적이고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에 관여하고 있는 승효상씨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권위주의 시대의 청산으로 해석했다. 그는 청와대를 ‘박조(朴朝) 건축’으로 규정하면서 권위주의 역사와 정치사가 응축되어 있는 건축물로 해석했다(「중앙일보」, 17/05/17). 물론 그곳에 박정희의 권위주의 통치 기억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박정희의 통치성이 가장 길고 짙게 드리워진 공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30여년 뒤 그의 정치적 계승자인 박근혜의 또 다른 억압적 통치로 청와대가 그야말로 권위주의의 거대한 상징물로 응고되어버렸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청와대를 떠나는 일을, 그것이 기능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음에도, 상징적인 코드로 풀어내려는 데 더 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를 벗어나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일을 권위주의와의 역사적 단절로 보는 것과 토론과 소통의 실천으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새로운 대통령 공간 광화문이라는, 2019년으로 예정된 그 정치적 프로젝트는 그와 같은 의미로 국한될 수 없는, 보다 중대한 의미의 지평 위에서 접근해야 할 기획으로 보인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탄생 이래 목도하고 부딪혀야 했던 일련의 복잡다단한 역사적 사건들이 그러한 시각을 지지해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광화문은 경복궁 정문의 의미와, 그 문에서 이어져 나간 육조대로, 그러니까 현재의 세종대로를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광화문은 청와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정치적 상징성들의 퇴적물이다. 그곳은 전통과 근대의 정치적 시간이 꿰뚫고 지나가고 있는, 그렇기 때문에 영광과 오욕이 공존하고 있는 장소다.

  광화문은 세종 13년(1431년)에 건립되었다. 세종은 그 문을 건립하고 이름 지으면서, 민본을 위한 군주와 신하의 협력적 통치 이념(군신공치제)을 표상하려 했다. 그 광화문은 경복궁과 함께 침략전쟁과 제국주의의 비극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소된 것과, 일제가 총독부 청사를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앞에 세우면서 광화문을 해체, 이축해버린 일이다. 광화문과 함께 조선의 통치철학을 구현하고 있던 육조대로가 일제의 문화적 야만성에 철저히 희생되어야 했던 사실도 여기에 더해져야 한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 광화문이 한국전쟁의 폭격으로 인해 처참한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비극을 잊을 수는 없다. 권위주의 권력의 표상체로서 박정희가 새로운 광화문을 건축했지만 그것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건립된, 역사의 복원과 정통성의 확립이 아니라 군사정권의 경제적 근대화 이데올로기의 선전물에 불과했다. 그에 정확히 의미의 조응을 이루는 방식으로 박정희는 세종대로를 군사주의와 경제적 근대주의의 공간으로 변질시켜버렸다. 하지만 광화문은 결국 복원되었다. 목조 건축물로 다시 태어났고 현판도 다시 달았다. 세종대로 또한 육조대로의 원형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그렇지만 광화문은 역사적 복원의 공간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복원을 향한 정치적 열정과 에너지가 분출된 시민적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겨울 반 헌법적 정치권력을 심판하는 시민의 거대한 목소리를 광화문은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치적 실천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한 것이 아니다. 광화문에 각인되어 있는, 1960년 4․19의 혁명적 저항과 1970년대 유신체제에 대한 거룩한 반대가 촛불시위라는 새로운 혁명적 운동으로 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명암의 드라마는 대통령권력이 광화문에 터하게 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일인가를 우리에게 인식시킨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여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모순과 굴레들을 정확히 마주보도록 하는 일이다. 광화문은 조선왕조를 난도질한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분단과 내전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가를 망각하지 않게 한다. 반민주주의 정치권력의 무도함과 무원칙을 말해준다. 그 반대편에서 광화문은 조선의 성군이 구현하려 했던 민본의 철학과 협력적 통치의 원칙을 일깨운다. 그리고 헌법을 존중하지 않은 권력, 공공성의 원리를 훼손하는 권력에 대한 시민적 저항은 언제나 정당한 행위임을 웅변해준다.

  그러한 사실에 비추어볼 때, 광화문에 터를 잡는 것은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역사적 억압과 대결과 부정의의 장막들을 걷어낼 의지의 표명이다. 정치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의 원칙이 무엇인가를, 정치적 정통성과 정당성의 기반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사유하는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광화문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귀감으로 삼는 정치가는 세종이다. 부왕의 권위에 눌려 있던 세종은 경복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뒤 재위 8년째부터, 태종의 정치적 야망의 공간인 창덕궁을 떠나 경복궁으로 이어했다. 그러한 정치적 상징성의 문이 열리면서 세종의 자율적 통치는 시작되었다. 세종의 이어와 문재인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은 전통과 근대의 긴 시간을 지나 공통의 독해 코드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근대적 정치공동체다. 그 점에서 세종의 정치적 실천은 정치인류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할 뿐, 근대국가의 정치이념을 견인할 텍스트가 될 수는 없다. 그 텍스트는 국민주권과 헌정주의 그리고 정치적 공공성을 외친, 광화문에서의 시민적 실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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