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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백팩을 멘 아줌마에 대한 단상
[200호] 2017년 06월 12일 (월) 스터딩 맘 .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마흔을 앞두고 있었다. 스물다섯에 수능을 보았던 전력이 있어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늦깎이의 삶에 내성이 생긴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학교로 돌아오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일 년에 천만 원이 넘는 학비였다. 다섯 살배기 아이를 돌보는 것도 문제였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간절했으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난 슈퍼우먼이 아니었다. 솔직히 일과 육아 그리고 공부를 다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의 선택 이후에 다가올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한 길을 나는 가고 싶었다.
   그때 복잡하게 뒤엉킨 머릿속을 정리해 준 분이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길을 먼저 간 선배였다. 그는 말했다. 2%라도 미련이 남는다면 그 길을 가는 게 맞다고. 현실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든 입학금과 첫 학기 학비만 준비해두라고. 막상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면 다 일이 되는 수가 있다고. 가슴을 울리는 깊은 위로였다. 그래도 두려웠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박사과정에 들어왔고 다행히 휴학 한 번 안 하고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물론 논문이라는 큰 산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 동동거려야 했지만 스스로 학비를 조달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힘에 부치는 일이 있었고, 좁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되어 안방을 내드려야 했지만 아이를 돌봐줄 시어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언제나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을 아이는 불평 없이 잘 자라 주었다. 눈을 뜨면 전쟁이었지만 나는 그 전쟁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가면을 바꿔 쓰며 살아남았다. 매순간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자고 다짐하면서.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었다. 속 모르는 이들은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할 게 뻔하니까. 돈과 시간이 남아 돌아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닌데도 ‘백팩을 멘 아줌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 같은 학생에 대한 편견은 학교 안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함께 공부하던 그들이 발표 준비가 부족해 알게 모르게 눈총을 받거나 대놓고 무시당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때론 동학(同學)들이 그들을 수업 분위기나 해치는 팔자 좋은 아줌마나 대학가에 나타난 신종 ‘맘충’이라 여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는지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덧씌웠을 편견에 맞서 늘 안간힘을 쓰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했어야 하니까.
   그러나 동학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주면 좋겠다. 지금 곁에서 아등바등 진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가 어쩌면 당신의 엄마나 이모, 혹은 누나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녀가 2%의 미련을 빌미로 98%의 진심을 저당잡힌 채 늦었지만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가는, 대한민국에서 0.2%도 안 될 ‘극한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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