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5.25 월 09:54
인기검색어 : 코로나19, 등록금 반환,
신문사소개 | 호수별 기사보기
> 뉴스 > 문화 > 문화산책
     
문화기획 - 향수, 그 아름다운 역행
현대인의 본능적 향수자극하는 파주 헤이리를 들여다 본다
[141호] 2007년 05월 07일 (월) 권두현 편집위원 편집위원


사람의 인생과 계절을 비교해본다면, 봄은 유년과 가장 어울릴 법한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봄은 항상 기다림의 계절이다. 아직 짙푸르지 않은 색들의 조화로 충만한 봄의 풍경. 이 풍경은 기다림만큼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 않는다. 그 자리를 여름에 곧장 내어주고는 또 다시 기다림을 요구하는 계절이 바로 봄이다.

유년의 시간이 봄이라면, 유년의 공간은 어디일까. 그곳은 전원이 아닐까. 사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유년을 도시에서 소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막연히 전원과 유년을 연결시킨다.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나는 고향이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버지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호적등본이 기록하고 있는 고향과는 별도로 우리네 마음의 고향은 항상 도시가 아닌 전원을 가리킨다.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 생의 뿌리이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본 적도 없는 전원의 공간이지만 어머니의 품이 거기라면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곳을 고향으로 막연하게 욕망하는 것이다.

헤이리에는 전원의 봄, 그리고 문화와 예술이 함께 한다. 복고를 거쳐 원시를 지향하는 그 공간. 우리들의 관념 속에서 굳게 연결되어 있던 원시와 야만의 굳은 고리는 헤이리에 발을 딛는 순간 여지없이 끊어져버리고 만다. 3년간의 구상을 거쳐, 1997년 발족된 헤이리는 15만평에 작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공간을 짓고 있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 들어본 적 없지만 친근한 이름, 여기에는 현대인의 본능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묘한 울림이 있다.

헤이리의 모든 건물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설계를 지향함으로써 산과 구릉, 늪, 개천의 많은 부분이 원형대로 보존된다. 생태철학적인 정신이 건축, 에너지 시스템 채택, 조경, 포장 등 전 영역에 걸쳐 수미일관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건물, 건축이란 이름이 주는 도시의 심상을 씻어내기 위해 헤이리는 모든 건물을 3층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기존의 도시를 옮긴 형태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과 조화를 이룬 휴먼 스케일의 도시를 위해서이다.

전원과 도시, 과거와 현재라는 ‘비동일성의 동일성’이 아름답게 머무르고 있는 곳. 여기에서 만나게 되는 과거는 낭만적이다. 가슴에 총탄을 맞아가며 죽어간 독재자의 얼굴은 ‘대통령 각하’의 얼굴이 되어 되살아나고, 대통령 각하의 얼굴은 ‘보통 사람’의 얼굴이 되어 우리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스민다. 헤이리에 들어서는 순간, 흘러간 기억의 저장소로서 우리 몸은 무장 해제되고, 매우 관대해진다. 그 당시 화염병이 뿜어냈던 독한 연기는 이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 속의 독성이 소거되면서, 그 기억은 추억이 되고 우리는 아름다움에 도취하게 된다.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것은 아마도 잃어버린 자아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복고의 관문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곳은 옛날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교실이다. 여기에는 그저 교실의 풍경이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짝꿍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아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아무개. 그 아무개와 나누어먹었을 도시락이 난로 위에 놓여있다. 난로가 전달하던 훈기는 오늘날 우리의 몸이 아닌 마음에 남아 있다. 헤이리의 난로는 비록 꺼져 있지만, 우리 마음 속의 난로는 여전히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있다.

복고는 원시로 치닫는다. 그리고 거기에 여류화가 천경자가 있다. 그녀는 1946년 해방공간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수많은 전시는 물론,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면서 쓴 해외여행기와 수필, 자서전 등 그림이 아닌 글로도 이름을 날렸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천경자의 작품 세계는 세계여행을 시작한 1942년부터 1969년까지를 전기로, 그리고 1970년 서초동 시절부터 1990년까지를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헤이리에 전시중인 작품은 이 중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주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꿈과 낭만을 담아내려 하고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과 여인은 세계여행을 통해 얻은 이국적 정취의 표현이자, 환상의 표현이며, 원시에 대한 향수의 반영이다.

천경자를 거쳐 방문객의 향수는 어느새 국경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그 향수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에 가서 닿는다. 생각해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전원을 고향으로 상상하는 방식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아프리카를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이해가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아프리카의 자연에 널려있던 적자생존의 방식은 제국주의자들이 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 너무도 유효적절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헤이리에서 식민 담론으로 재단된 국경, 그리고 탈식민 담론으로 다시 한 번 재단된 우리들의 인식을 훌쩍 뛰어넘어 강렬한 색채와 역동성으로 존재하는 아프리카와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근대의 역동성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근대가 강요하다시피 요구한 속도의 미덕 대신 이곳 헤이리는 느림의 미학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아니, 미학이라는 말도, 지배라는 말도 헤이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서는 시간도, 풍경도, 사람도 느리게 흘러간다고 하면 충분할 것이다.

하루 일과를 모두 끝내고 집에 돌아와 외투를 벗어던지고, 소파에 몸을 던질 때 비로소 새어나오는 현대인들의 짧은 탄식. 생의 중요한 호흡을 우리는 그렇게 짧은 탄식으로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시의 유혹은 달콤하다. 그러나 달콤함은 항상 또 다른 수식어를 괄호 안에 감추고 있다. 그 달콤함은 ‘씁쓸’하기까지 하며, 때론 ‘살벌’하기까지 하다.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이를 말해주지 않았던가. 〈달콤한 인생〉은 ‘A bittersweet’이었고, 대학교 시간강사의 연인이었던 동안의 미녀는 살인을 일삼는 〈달콤, 살벌한 연인〉이었다.

들어본 적 없는 ‘헤이리 소리’라는 농요가 막연한 친근감을 자아내는 것은 이러한 헤이리가 이러한 현대 도시의 씁쓸함과 살벌함으로부터 비껴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 대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국 존재의 기원을 더듬게 되는 곳. 헤이리는 어머니의 또 다른 이름이며, 생의 근원에 무척이나 가까이 존재하는 이름이다.

권두현 편집위원

ⓒ 동국대학원신문(http://www.dgugs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페이스북 방문해 주세요!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방송국 동국대학원신문 동대신문 동국포스트
동국대홈동국미디어컨텐츠 센터동대신문교육방송국동국포스트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04620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 학술관 3층 대학원신문 | 전화 : 02-2260-8762 | 팩스 : 02-2260-8762
발행인 : 윤성이 | 편집인 : 이경식 | 편집장 : 김태환 | 발행처 : 동국대학교 대학미디어센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경식
Copyright DGUGSPRES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gupres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