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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잡글'의 추억
[200호] 2017년 06월 12일 (월) 이 철 한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글 창을 켜고 칼럼의 주제를 고민하자니, 오래 전 ‘잡글’의 추억이 떠오른다. 대학원생 시절 조교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나의 지도교수님은 사과대 대학원장을 맡고 계셨는데, 바쁘신 와중에도 나에게 업무를 주고 체크하는 일을 잊지 않으셨다. 그 중에서는 ‘잡글’이라 하여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할 가벼운 글들을 대신 쓰는 일도 있었다. 나는 내 원고가 활자화된다는 것에 얼마 정도 신기함을 느꼈고, 그럭저럭 즐거운 마음으로 글쓰기에 임했다.
   안타깝게도 교수님은 나의 글을 못마땅해 하셨다. 젊은이의 패기가 묻어나는 어투, 다소 비판적인 논조는 종종 기성세대의 심기를 거슬렀던 것이다. 내 글은 한 번에 통과되는 법이 없어 나는 매번 연구실에 남아 원고를 수정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의 문장은 조금씩 나이를 먹어갔고, 종래에는 교수님의 지적 없이도 ‘잡글’로서 합격점을 받기에 충분한 수준이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이목을 끌 위험이 없는 무난한 학생으로 변해갔다.
   정부 프로젝트를 조사하고 학술재단에 집필 지원금을 신청하였으며 교수님의 잡글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그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던 날, 나는 승용차 옆자리에 앉아 교수님께 발표 내용을 알려드렸다. 교수님은 나의 브리핑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더니 수고했다라고 한마디 하셨다. 교수님께 인정받은 것 같아 너무나도 기뻤다.
   일요일 어느 오후 연구실로 전화가 한통 왔다. 과제를 하고 있던 나는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았는데 지도교수님 전화였다. 자택 부근에서 접촉사고가 났다고 하셨다. 사고처리를 해야 하니 당장 오라고 하셔서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경찰이 오고 사건을 처리하느라 길거리에서 시간이 지연되었다. 그래서 잠시 근처 그늘에서 쉬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나를 잊은 채 차를 출발시켜 가버리셨다. 내 가방은 차 안에 있었고 지갑은 가방에 있었다. 나는 두시간 넘게 걸어서 학교로 돌아왔고 그 후로 졸려서 과제를 미처 다 하지 못했다. 
또다른 프로젝트 발표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기분이 좋으셨던 교수님께서는 지도제자들을 데리고 스시 집(횟집이 아닌)을 찾았다. 대학원생 신분으로는 처음 가보는 고급 식당이었다. 그 자리에서 교수님은 국내 대학원의 높은 교육수준에 대해 말씀하셨다. 당신께서 이렇게 잘 가르치는데 학부생들이 대학원에 진학을 잘 안하는 현실을 슬퍼하셨다. 우리는 생선살을 입안에서 녹이며 경청했다. 교수님은 내 제자들이 실력에 비해 사회에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며 진심으로 속상해 하셨다. 또 술이 조금 취하셔서는 내가 얼마나 훌륭한 제자인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칭찬하셨다.

   그리고 나서 교수님은 (특별히) 나에게 집이 비는 연휴 기간 동안 강아지 산책과 투약(나이가 많아서 관절염약을 꼭 먹어야 했다)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셨다. 10만원도 주셨다. 횡재였다. 교수님은 기분이 좋으셨는지 자제분들 자랑을 하셨다. 자제분들은 실력이 좋고 졸업 후 사회에서  미국으로 조기 유학 중이라고 하셨다. 나는 한국 대학원의 높은 수준에 대해서 말하시고는 정작 자제분들은 미국에서 공부시킨다는 말을 듣고 놀랐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까지 기술한 대학원생활은 다행이도 나의 개인 경험도 아니고 동문수학했던 선후배의 개인경험도 아니다. 단지 국내 대학원생 시절 다양한 인연으로 알게된 한국의 대학원생들이 푸념을 모두 모아서 구성해 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한사람이 겪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도 동시대의 대학원생 다수에게는 현실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푸념은 현시점에서는 “설마 그럴리가” 라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과거의 일이어야 하겠다.
   우리 학교는 대학원생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학문후속세대인 대학원생 여러분이 모교에서 교수직을 포함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계속 그래야 할 것이다. 
   부디 우리 사랑하는 동국대 대학원생들은 자신이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고 휘둘리지 말고 탐욕에 이르지도 말고 지혜롭게 수행과 같은 학문연마에 한길로 정진하기를 바랍니다. 대학원 신문 200호를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대학원생 애독자 여러분 우리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합시다. 꽃길만 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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