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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애는 위대하다 -존 윌리엄스, 『스토너』
내 인생의 책
[200호] 2017년 06월 12일 (월) 조해진 소설가
   
   

   ‘내 인생의 책’을 추천하는 글을 쓰기 앞서, 사실 내게는 내 인생의 책이 따로 없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수전 손택은 독서가 ‘여흥이자 휴식이며, 작은 자살’이라고 했다(『수전 손택의 말』, 마음산책). 작은 자살이란 표현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망각한 채 책 속의 인물에 빙의되어 독서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 역시 ‘작은 자살’과 다를 바 없는 독서를 추구하고 사랑한다. 독서를 하는 매순간이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자 타인이 되어보는 연습이라면, 나를 사로잡은 그 모든 책들이 내게는 ‘내 인생의 책’인 것이다. 그 책을 읽던 나의 시간이 그대로 책 속에 흡수되어 나와 책의 구분이 의미 없어지는 그런 경험은, 늘 나를 차갑게 일깨웠고 뜨겁게 안아주었다. 그 수많은 내 인생의 책들이 없었다면 나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그 삶의 시공간을 구체화하는 소설 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내 인생의 책’은 카프카가 써주었고 그 이전엔 도스토예프스키가 그 몫을 했다. 야만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일깨워준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인 적도 있고, 그와 상반되게도 망가진 청춘의 일탈을 파격적으로 그린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일 때도 있었다. 윌리엄 포크너, 존 버거, 존 쿳시, 마르그리트 뒤라스, 파트릭 모디아노, 그리고 오정희, 박완서, 김연수, 한강, 권여선 등을 말하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수많은 작가들, 작품들을 머릿속으로 소환해보다가 나는 책장에서 이 책,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꺼내든다. 책의 표지는 투박하고, 소위 말하는 메이저급 출판사의 낙인도 없다. 책날개엔 그윽한 눈동자로 카메라를 건너다보는 작가 사진이 없으며 그 소개는 간소하다. 존 윌리엄스는 평생 네 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한 과작의 작가이고, 화려한 문학상과도 인연이 없었다. 『스토너』는 독자를 현혹할 그 어떤 미끼도 장착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일단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아마도 당신은 당신의 삶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을 완전한 타인의 일대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그 일대기는 소박하게 강렬하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1891년 미국 미주리주(州) 중부의 작은 농가에서 태어났고, 컬럼비아 미주리대학의 농과대학에 다니던 중 영문학에 빠지게 되어 평생 학자로 살았으며, 교수 정년을 마친 뒤 암으로 죽는다. 그사이에 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고 부모의 장례를 치렀으며 단 한 번의 일탈적인 사랑과 두 번의 세계전쟁을 통과한다. 학자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고 합리적인 교육자로 성장하는가 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지지만, 권력욕이 강한 동료 교수와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는 그 성향이 완전히 다른 타자를 끝내 포용할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요약해놓으면 스토너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 시대 미국의 중산층 남자들의 삶을 총합하여 평균을 내면 스토너의 일대기가 산출될 것만 같다. 그러나 400페이지 정도 되는 책 속에는 그 평범함을 아무것도 아니게 하는 스토너만의 순간들이 있다. 스토너가 우연히 듣게 된 영문학 수업에서 영혼 전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한 순간, 처음으로 교단에 서서 학부생에게 수업을 하던 날, 그 외에도 친구의 전사소식을 듣고 파티에서 미래의 아내가 될 이디스를 만나고 그 아내와 사랑과 반목을 반복하고 종신교수에 임용되고 특출한 학생을 만나고 암 선고를 받고 결국 임종을 맞는 그 모든 순간이 마치 소설이 아닌 실제처럼 너무도 섬세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스토너의 그 순간들은 때로는 내 삶의 일부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아니, 나는 『스토너』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윌리엄 스토너의 삶을 완전히 통과한 전율을 느꼈다. 한 권의 책으로 또 하나의 삶을 덤으로 사는 독서…….      
   가끔 생각한다.
   내가 죽은 뒤 내 생애를 요약하면 몇 줄이 될까, 하는 생각……. 아마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몇 줄의 문장이, 생몰년도와 등단시기와 출간한 책들의 목록이 나 자신은 아니다. 내 진짜 삶은 그런 문장 바깥에 있다. 실재하는 순간에 있다. 어떤 문장도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규정되지 않는 생애를 산다. 그리고 그 모든 생애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 세계의 중심에 서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하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조명이 모두 꺼진 무대 뒤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그렇게 남몰래 우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준다. 환희와 영광의 순간을 온전히 소유하는 것도, 좌절과 실패의 시간을 이겨내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위대하지 않은 삶은 없는 것이다. 『스토너』는 그 모든 평범한 위대함에 바치는 소설이며 동시에 윌리엄 스토너,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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