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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묘]인간은 동물 생명에 대한 권한이 없다
동물 실험 윤리
[200호] 2017년 06월 12일 (월) 최 훈 강원대학교 교양학부 (철학) 교수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자는 논의는 주로 동물을 음식으로 먹는 것에 집중된다. 육식의 비윤리성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보여 줄 수 있다. 육식이 주는 손해는 아주 크지만 거기서 얻는 이득은 아주 사소한 것이고 대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육식을 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야 하고, 요즘처럼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밀집 사육해야 한다. 육식이 주는 이익은 고기를 씹을 때의 입맛인데 이는 동물이 겪는 고통과 죽음이 주는 손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다. 육식이 주는 영양은 채식으로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거나, 채식이 육식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과학적인 상식이다.
   우리가 동물을 이용하는 또 다른 흔한 관행은 동물을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을 윤리적으로 반대하기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동물 실험이 가져다주는 이익은 사소하지 않고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물 실험 덕분에 각종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여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고 생명이 연장되었는데, 이것은 실험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동물의 고통과 희생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큰 이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직 배양을 이용한 실험이나 컴퓨터 모의실험이 동물 실험의 대안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유기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그런 실험은 확실하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물 실험 옹호 논증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자들은 탈리도마이드 사례처럼 동물 실험을 통과하여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인간에게는 부작용을 일으킨 경우나, 거꾸로 초기 소아마비 연구자들이 붉은원숭이에만 연구를 집중하여 치료법 발견이 치료법이 25년이나 늦어진 경우를 예로 들어 동물 실험이 반드시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거나 동물 실험 때문에 오히려 의학 발전이 늦어진다는 주장을 한다.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 동물 실험은 꼭 필요하다거나 확실하거나 믿을 만한 동물 실험의 대안은 없다는 주장은 이와 같이 경험적인 증거가 필요하므로 쉽게 결론을 내기는 힘들다. 한 번 다른 식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실험은 무엇일까? 그리고 가장 확실하거나 믿을 만한 실험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다. 동물 실험은 기본적으로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기에 그 대안으로 이루어지는 실험이지만, 동물과 인간의 유비에 기대는 만큼 오류의 가능성이 항상 있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을 한다면 가장 확실하고 믿을 만한 실험 데이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 대상 실험은 하면 안 되는가?
   그러나 인간 생체 실험은 극심한 반대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는 나치나 일제의 731부대의 만행에 치를 떤다. 하지만 질문해 보자. 왜 동물에게는 실험을 해도 되지만 인간에게는 실험을 하면 안 될까? 인간은 동물에게 없는 어떤 특징이 있길래 실험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될까? 실험의 신뢰성 면에서는 오히려 동물보다 더 확실한 대상인데도 말이다. “어디 감히 인간에게.”나 “우리와 같은 인간이니까.”라는 대답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하다. 백인 우월주의자도 똑같이 “어디 감히 백인에게.”나 “우리와 같은 백인이니까.”라는 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옹호하지만 이것은 차별주의로 비난받을 뿐이다.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이유가 아니라 인간은 실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합리적이고 비자의적인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치나 일제에 의해 강제로 실험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실험의 대상이 되는 동물들은 기꺼이 실험에 응할까? 동물들도 인간처럼 말을 못 할 뿐이지만 발버둥치는 행동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한다. 흔히 인간은 동물보다 합리적이라고 정의하는데, 이것도 동물실험 필요성에 대한 이유로 제기되곤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라는 특성이 실험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독극물 주사를 맞는다고 할 때 합리적이라고 해서 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자괴감이 더해지겠고 그에 따라 고통의 양이 더 많기는 하겠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동물이라고 해서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인간 중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갓난아이나 심각한 정신적 지체가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해서 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용납할 이들이 있을까?
   영장류 동물은 인간과 가깝다는 이유로 간혹 실험동물로 쓰인다. 그러나 영장류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성을 갓난아이나 심각한 정신적 지체가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지고 있기에, 인간에게 실행하면 경악할 실험을 영장류에게 하는 것은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 못지않은 차별이다. 유일하게 동물 실험을 옹호할 수 있는 길은 가장 많이 실험동물로 쓰이는 설치류가 인간에 비해 고통의 양이 적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포유류 중에서도 진화론적으로나 계통학적으로 인간과 멀리 있으므로 고통을 느끼는 중추 신경이 우리보다 덜 발달되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실험 쥐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고통을 덜 느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와 진화론적으로나 계통학적으로 멀리 있다는 사실은 그 실험 결과를 의심케 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된다. 우리와 가깝지 않은데 그 실험 결과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동물실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어떤 혜택이 많다고 해서, 무엇인가가 간절하다고 해서 그것을 얻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 실험을 옹호하는 여러 논변에서 동물 자리에 인간을 대입해 보면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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