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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동국대 노동자들의 하루: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대학 내 노동의 풍경들
[200호] 2017년 06월 12일 (월) 익명 기고
   
   △ 휴게실에 앉아있는 미화 노동자
     

   * 편집자주 : 우리는 흔히 대학의 구성원으로 학생과 교수, 교직원을 거론한다. 그러나 대학에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지만 단번에 떠올려지지 않는 구성원들이 있다. 본 르포는 보이지 않는, 보이지만 기억되지 않는 ‘대학 내 노동자들의 하루’를 재구성하고 그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기획되었다. 모두 실제 인터뷰에서 발화된 내용들로 구성된 사건들이지만, 다수의 전현직 조교, 각 건물의 경비관리원, 주차관리요원, 미화노동자들 수 명을 인터뷰하고 재조합하여 작성한 글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밝힌다.

   어느 행정조교의 도둑맞은 하루

   저녁 7시, 조교 A씨는 학과 사무실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입학한 지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함께 대학원에 입학했던 동기들은 종강에 앞서 기말 보고서로 낼 논문을 마무리하거나, 세미나 준비로 한창 바쁘다. 100명이 넘는 입학지원서류를 모두 출력한 이후에야 이제 종강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그러나 정작 두 학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떠오르는 건, 완성하지 못한 몇 편의 보고서들과 수없이 출력한 서류들, 끝내 전화통화를 하지 못한 학과 교수님들의 목록,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의 순서들이다.
상록원 학생식당 배식이 곧 끝날 터인데, 점심시간을 놓쳐 뒤늦게 빵을 사다먹은 탓인지 이상하게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 지체하다간 학교 바깥으로 나가 식사를 해야 하거나 아예 굶어야 한다. A씨는 슬리퍼를 벗고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학식을 먹어야 돈도 아끼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콧물 같은 소스로 뒤덮인 덮밥을 한술 뜨며 생각한다. ‘오늘은 강의도 안 듣고, 그다지 고생스러운 일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진이 빠질까.’ 기를 빨아먹는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해서 메일을 확인하고, 지시받은 업무들을 순서대로 처리하고, 입학지원서류를 출력해서 정리하고, 결재를 받으러 교수님 연구실에 몇 번 들락거린 게 전부이다. 학기 초의 강의 배정 전쟁과 학과 행사 뒤치다꺼리 같은 것에 비하면 이런 건 일도 아니다. 지난 학기보다 일의 속도도 능률도 훨씬 빨라졌다. 일을 참 잘 한다고 교수님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자주이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다. ‘내가 대학원에 왜 들어왔었지?’ 어쩐지 답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입학하기 전에 선배들이 했던 잔혹한 농담들이 가끔 생각난다. 대학원 입학에 관한 조언을 얻으려던 동기에게 한 선배는 한숨을 푹 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네 집 타워팰리스야? 그럼 대학원 입학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동기는 정말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었다. A씨는 지금은 일본으로 유학을 간 그 동기를 종종 생각한다.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니면, 더 좋을까. 어떤 책들을 읽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부모님께 이런 어지러운 생각들을 말할 수는 없다. 매월 130만원 월급을 받으며 대학원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하자, 이제 걱정을 조금 덜었다는 듯 환하게 웃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 생생하다. 막상 월급을 받아보니 130만원이 안 되는 금액이었지만, 말씀드리지 못했다. 학교에서 조교 제도를 개편하면서 올해부터는 실수령액이 1,240,350원으로 줄었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돈을 벌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건 그래도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었다. 5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나면, 실제로 버는 돈은 한 학기에 200만원 남짓일 뿐이지만.
   업무를 인수인계해준 선배는 1년 넘게 이 일을 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 1년 동안은 오히려 학부 때보다도 수업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개강 즈음에는 강의시간표를 짜고, 강의실을 배정받아 할당하고, 학적 서류들을 만드느라 수업에 충실히 참석하지 못했다. 학기초가 지나자 자신을 제외한 동학들이 차곡차곡 읽어낸 텍스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꼈다.
   교수님들은 강사들의 전화번호만 주고 시간표를 알아서 짜라고 했지만, 강사들마다 강의 가능한 시간은 모두 달랐고, 구석진 곳에 있거나 작은 규모의 강의실을 배정받은 교수들은 A씨를 찾아와 항의했다. 교수들끼리 강의실 배정 문제를 놓고 갈등하다가, 결국 원하던 강의실을 배정받지 못한 교수가 사석에서 “내가 그 자식 학교 못 다니게 하겠다”고 말했다는 일을 듣기도 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선배는 돌에 맞은 개구리가 되었다. 선배는 수료만 하고 정말 학교를 떠났다. 시간이 흐른 뒤 선배는 “그땐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책꽂이가 덮쳐 쏟아져 내리는 듯한 환상에 시달렸다”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았음을 덤덤히 고백했다. 결재나 전달사항이 있을 때, 교수님들의 임용순서를 꼭 지켜서 차례대로 방문해야 한다고, 교수님들의 성을 따 노래처럼 부르면 외우기 쉽다고 쾌활하게 알려주던 선배였다. 원체 웃는 낯이던 선배의 볼은 항상 발그레했다. 조교는 ‘서비스직’이기도 하다고, 항상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해야 자신의 기분도 밝아진다고 선배는 말하곤 했다. 전산실 직원도 아닌데, 시시때때로 고장 나는 교수님들의 컴퓨터를 몇 시간이고 고치며 끙끙댈 때나, 밤 12시건 새벽 6시건 울리는 교수님과 학생들의 카톡 문자와 전화에 친절하게 응대하던 선배는, 대학원을 그만 둔 이후에야 부러 꾸며 웃지 않는 법을 알게 된 사람 같았다.
   A씨는 올해까지만 행정조교로 일하겠다고 교수님께 말해야겠다고 중얼거린다. 처음 하는 생각은 아니다. 근 1년간 집을 나서며 ‘등교’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등교’가 아닌 ‘출퇴근’을 하는 동안, 자신은 ‘학생’이 아니라 ‘비정규직 조교’일 뿐이었다. 아마 자신보다 조교 경력도 길고 빠릿빠릿한 옆 학과의 조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옆 학과 조교는 학부 때는 근로학생으로 일하고,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조교로 일하고 있다. 경력 덕분인지 일은 다른 초임 조교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잘 하지만, 조교들이 받는 실수령액은 호봉 없이 모두 동일하게 월 1,240,350원이다. 담당하는 학생수가 100여 명이든 500여 명이든, 주말에 나와서 일을 하든, 밤샘 야간근무를 하든, 학과 행사에 참여하든 말든 각 학과에 배정된 조교의 월급은 모두 동일하다.
   상록원에서 내려온 A씨는 팔정도 부처님 옆에 서서 다닥다닥 붙은 만해관 창문들을 바라본다. 저 한 칸씩의 연구실 안에 앉아 있는 교수님들도 학교의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교수들인 것일까. 팔정도를 가로질러 도서관에 가는 학생들도 학교의 입장에서는 모두 같은 학생들인 것일까. 그럼 자신은 무엇인가. 각 학과마다 배정된 모두 같은 조교 중 하나일 뿐일까, 아니면 차고 넘치는 대학원생 중 하나일 뿐일까.
   A씨는 알고 있다. 자신이 없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보란 듯 이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고, 누구라도 하게 될 일이라는 것을. A씨는 생각한다. 내 하루는 어디로 갔을까. 내 내일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온화하게 미소 짓는 부처님의 입꼬리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A씨는 다시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어쩐지 사무실 앞에 잔뜩 짜증이 난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프로 경비관리원 B씨의 하루

   새벽의 복도를 걷다 보면, 이곳엔 벌레와 나뿐이라는 고요한 생각이 든다. 처음 근무를 시작할 때는 학교의 고요함이 낯설었다. 왁자지껄하고 활기 넘치는 한낮의 열기가 모두 사그라진 이후의 공허함. 이제는 그 침묵과 어둠이 익숙하다. 24시간씩 격일로 교대 근무를 서다 보니,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도 같다. 앞으로 남은 내 삶의 시간 중 반은 동국대에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일하는 곳이 대학이니 만큼 부러 틈틈이 책도 읽고 뉴스도 찾아보면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총24시간 동안 3시간 단위로 근무팀의 교대가 이루어지다 보니, 새벽 휴식시간에도 3시간 넘게 눈을 붙이지는 못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의자에 기대앉아 쪽잠을 자야 했는데, 학교의 배려로 작은 창고방을 휴게공간으로 얻었다. 키가 꽉 차는 작은 방에는 두 명이 누우면 더 디딜 공간이 없지만, 다행히도 3명이 한 팀이다 보니 셋이 누울 일은 없다. 조금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공간이라도 얻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늘상 쪽잠을 자다 보니, 몸이 개운하거나 하진 않지만 골골대는 티를 낼 수는 없다.
   경비관리원의 정년은 71세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곳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용역직원이라도 정년은 다르다. 저 앞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C씨의 정년이 자신보다 수 년 긴 것이 부럽다. 용역업체에서 근무정년을 늘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요구할 수는 없다. 걱정은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주겠다고 했는데, 막상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분명히 월급만 올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든다. 인건비에 맞춰 인원을 감축하거나, 휴식 없이 근무시간을 빡빡하게 조정당할 것만 같다. 분명 인원감축이나 근무조정 둘 중 하나는 감행될 것이다. 세금을 제하고 야간수당과 보조금을 합쳐 받는 실 수령액은 182만원이다. 24시간씩 학교에 머물며 약 15일을 일해서 버는 돈이니,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돈이다.
   그렇다고 꼭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대학 전체에서 보면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름의 사명감이 있고, 보람을 느낀다. 보안도 보안이지만, 안전도 중요하다. 각 학생회실에 열쇠 대신 비밀번호를 눌러 입력하는 도어락들이 도입되던 시기였다. 학생들의 공간이지만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발품을 팔아 각 학생회로부터 비밀번호와 학생회장의 전화번호를 받아 정리해놓았다. 그런데 바로 얼마 뒤에 명진관 순찰을 도는데, 어디에선가 매캐한 냄새가 났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자마자, 바로 본부로 달려가 정리해둔 비밀번호와 연락처를 가지고 뛰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이미 한쪽 벽면이 다 까맣게 그슬린 상태였다. 제대로 끄지 않고 버린 담배꽁초가 쓰레기통을 모두 태운 것이었다. 다행히 초기 진화에 성공했고, 큰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 후에 용역회사로부터 상여금으로 5만원을 받았다. 돈보다는, 건물이 타지 않고 사람이 다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옆 학생회실에 있던 학생이 다쳤거나 건물이 전소됐더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 하나의 철칙은 경비 중에 신문이나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동료가 경비를 설 때였는데,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동료에게 지나가던 교수님이 어디 경비하면서 책을 보냐고 호되게 나무란 적이 있었나보다. 사실은 나도 아주 예전에는 신문 같은 걸 가끔 보기도 했다. 순찰 돌지 않고 앉아서 수십 대의 CCTV를 보고 있으면 머리가 멍해지기 때문이다. 책과 뉴스를 찾아보기는 하지만 이제는 집에서만 본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인터넷 기능은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근무에 소홀해지는 것이 싫다. 대신 오가는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인사를 한다. 그러다보면 일이 더 즐거워진다. 사실 올해 서른중반인 막둥이도 대학원에 다닌다. 큰 손주는 올해 고3이라서 내년에는 대학에 갈 것이다. 딸 같고 손주 같은 학생들을 보면 기운이 나고 하루가 즐겁다.

   총장님이 만들어주신 미화원 휴게실

   C씨는 요즘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이 버린 일본어교재에 달려 있던 회화 CD를 한 학생에게 부탁해 휴대전화로도 들을 수 있도록 옮겨주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청소를 마치고 깔끔해진 화장실과 복도를 틈틈이 닦아내며, 일본어를 중얼중얼 따라 외우는 순간이 가장 즐겁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작년에는 학교의 여러 사건들 때문에 점심도 굶은 채 빨간 앞치마를 매고 본관 앞에 모여 투쟁을 했다. 우리는 정당한 요구를 할 수 있고, 또 뭉쳐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C씨는 그때 본관 앞에서 투쟁을 할 때 D여사가 확성기에 대고 했던 말을 가끔 떠올린다. “우리 중에 대학 나온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나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내가 동국대에서 일한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다 내 새끼같이 예뻐요.” D여사의 고백 아닌 고백에 C씨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대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밤 늦도록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쓰럽고 대견하다.
   얼마 전에는 총장님이 자판기 뒤편 창고를 개조해서 휴게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에어컨까지 달아주셨다. 바닥에 물이 올라오고 벌레가 다니는 컴컴한 지하 창고에서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지나가다 보셨던 모양이다. 청소를 마치면 새 휴게공간에 가서 눕기도 하고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C씨는 다른 건물 여사들이나 경비관리원들이 쉬는 공간은 여전히 바닥에서 물이 차오르고 퀴퀴한 곰팡내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휴게공간은 대부분 계단 밑의 낮은 창고이고, 지하와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다. 애초 배선이 없도록 설계된 공간이라서 긴 전선을 이어 대롱대롱 알전구를 달아놓은 곳도 있다. 총장님께서 다른 건물의 창고방도 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C씨는 이 휴게실은 완전 호텔이라고 생각한다. 늘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주차관리요원 D씨의 계절

   바람이 한결 포근해지면서 근무 서기가 나아졌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위가 매서웠다. 팔정도에 서서 한 시간 근무를 서고 30분은 초고에 가서 쉬는데,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정도의 맹추위였다. 하지만 이제 곧 불볕더위가 찾아들 텐데, 걱정이다. 같은 팔정도라도 다향관 앞과 명진관 앞은 체감온도가 다르다. 그나마 다향관 앞에서 근무를 설 때가 온도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도 D씨는 직업이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볕이 뜨거워도 선글라스를 끼지 못하고,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해도 마스크를 쓰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일인데,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겨울 학교 민원 게시판에 주차관리요원이 너무 추워 보인다며 야외 난로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던 학생이 있었다. 용역업체가 아닌 학생에게서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민원을 신청했다는 학생은 민원에 대한 회신에서, 주차관리원 아저씨들이 마음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는데, 하지만 난로를 설치한다면 우리가 마음이 더 불편할 것 같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진짜냐고 물었다. 예전에는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의자를 설치했다가, 누군가가 왜 주차관리요원이 앉아있냐고 항의를 해서 결국 의자를 치우기로 했다는데,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요즘엔 마트의 캐셔 직원도 계산을 안 할 땐 앉아 있을 의자를 마련해준다며…… 학생은 동국대가 사람의 노동을 가장 소중히 따뜻하게 대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일인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D씨는 그런 변화를 바라기보다는, 학생이 계속 그런 요구를 하고 문제를 키우면 회사와 학교 사이에 주차관리요원들이 끼어 불편해질 것이 가장 먼저 걱정된다. 우리가 그런 요구를 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정말 너무한 일이라고 열을 내는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돌려보낸다. 사실은 지나가는 학생이나 교수님들이 인사만 해줘도 고맙고 기운이 난다. 가끔 음료수나 간식을 주고 가는 학생들도 있다. 힘든 건 주차관리 지시를 따르지 않는 몇몇 사람들 때문이지, 근무환경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명이 앉으면 더 발 들일 틈조차 없는 다향관 옆 휴게박스가 조금 더 커지고, 날씨와 관계없이 내내 장승처럼 서 있어야 하는 근무 조건이 조금 나아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D씨는 이렇게 자신을 찾아와주고, 오며가며 눈을 맞추며 인사해주고, 때로는 따뜻한 말을 건네는 동국대의 학생과 교수님들이 고맙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그 나머지의 시간은 그저 오롯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땅 한 곳에 붙박인 채로 흘러가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자신은, 스스로 동국대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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