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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역적’이 아닌, 현재진행형 ‘위안부 영화’
[199호] 2017년 04월 10일 (월) 유지나 영화영상학과 교수

   학교 도처에 흐드러지게 만발한 개나리 무리가 노란빛으로 봄 세상을 밝혀준다. 이번 봄에는 유독 노란 빛이 마음속에 진하게 공명한다. 색채 연쇄작용일까? 이 노란빛은 곧 세월호 노란 리본과 위안부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랑나비로 연결된다.
   이번 학기에 다시 만난 <한국영화사> 수업도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깨닫게 해준다. (책 제목이기도 한) “역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E. H, 카의 명언도 진하게 다가오는 노란빛처럼 그 현재성에 방점을 찍으며 새롭게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발표된 한일 위안부합의에서 ‘불가역적'(不可逆的)이란 표현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 떠오른다. 일상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 ‘불가역적’이란 용어의 뜻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기에, 돌이킬 수 없다‘, 라는 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역사 왜곡의 정당화로 보인다. 2016년 겨울철 본격화된 촛불 시민혁명 이후, 역사는 과거를 현재진행형으로 다시 쓰기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체감하는 이 봄엔 더욱 그렇다. 한국영화사 수업에서 최근 개봉작 <어폴로지>를 다룰 때도 영화와 역사의 관계 생성은 ‘불가역적’이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어폴로지>(2016, 티파니 슝)는 기억과 침묵 속에, 그리고 교과서 밖에 존재했던 위안부문제를 현재의 스크린에 띄워낸다. 이 다큐가 가로지르는 세 할머니의 일상 속에 드리운 아픈 과거사는 역사 다시쓰기의 소명감을 전해준다. 추운 겨울날, 두터운 코트를 껴입고 장작도 패며 홀로 일상을 꾸려나가는 차오 할머니(중국)는 동네사람들이 다 알아도 아픈 과거에 침묵한다. 털어놓기 시작하면 닥쳐올 또 다른 아픔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이유로, 특히 결혼에 장애가 될까 겁이 나 위안부 과거사를 숨겨왔던 아델라 할머니(필리핀)는 숨겨온 과거에 죄책감까지 느끼며, 침묵을 깰 용기를 얻는 변화의 순간을 맞는다.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는 동시에 그 폐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부터 일본의 거리집회와 강연장, 그리고 광화문 광장 뒤 일본대사관 앞 수요 집회에 참석하는 길원옥 할머니(한국)의 인생여정을 발로 쓰는 역사로 보여준다. 이렇게 세 분의 일상을 교차하며 짜나가는 티파니 슝 감독의 다큐 제작 여정은 6년에 걸친 이들과의 사귐 속에서 피어난다.
   이렇듯 위안부 문제에 직면하는 영화들은 2000년대 들어 다큐와 극영화 형태를 넘나들며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광복70주년 특집극으로 KBS1에서 제작, 방영된 <눈길>(2015)은 토리노 영상제 수상이후 극장용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위안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상황에 초점을 맞춘 참혹한 <귀향>(2015, 조정래)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과 국내외 상영이 이루어졌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만드는 위안부 소재 그림책 ‘꽃할머니’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 (2012, 권효)은 과거의 아픔이 예술 창작의 에너지란 점을 증명해낸다. 재일 조선인 송신도 할머니의 일본 정부 상대 위안부 배상사건을 다룬 10년간의 재판과정을 담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2009, 안해룡)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시아 전역 일본 군대가 있는 곳에 병설된 위안소, 그곳에 강제로 동원된 위안부의 끔찍했던 과거사를 피해자의 증언을 통해 고증해 나가는 <끝나지 않는 전쟁>(2008, 김동원)은 한국,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 등에 걸쳐 이 문제를 풀어낸다. 그 전초전에 된 다큐 시리즈<낮은 목소리 1, 2, 3>(1995~1999, 변영주)는 ‘나눔의 집’에서 공동체 일상을 나누는 할머니들과 영화제작 스텝의 연대감으로 침묵의 봉인을 떼어내는 영화작업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런 현상은 ‘위안부 영화’란 주제적 장르로써 현재진행형 역사쓰기를 보여준다. 영화와 역사의 이런 함수관계는 나치의 독재 권력이 낳은 폐해를 다룬 영화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어 ‘홀로코스트 영화’의 흐름 형성에서도 발견된다.
파면당한 정권이 깜짝쇼처럼 연출했던 12.28 한일위안부 합의는 곧 다가올 5월 9일 대선을 앞두고 공통적으로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주요 후보 5명 모두 위안부 합의의 파기 혹은 재협상 촉구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노란 물결로 진행되는 이 봄, 현재형 과거사인 위안부 문제에도 노랑나비효과가 발휘되는 희망의 빛이 사방에서 피어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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