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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위한 침묵
한병철, 『타자의 추방』, 이재영 역, 문학과지성사, 2017.
[199호] 2017년 04월 10일 (월) 박혜연 편집위원
   
     

    세계 한편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난민이 발생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SNS에 자기 사진을 올리며 타인과 소통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소통이 아니다. 결국 어떤 세계에서든 현대인은 불안정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타자의 추방』에서 한병철은, ‘타자’를 소멸시키는 시스템을 우울한 현대의 근원적인 문제로 제기한다.
    경험의 본질은 고통이며, 타자는 낯설고 두렵다. 그리고 ‘낯섦’과 ‘두려움’은 경험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오늘날 현대인은 타인으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며 ‘같은 것’들 속에서 안전을 추구한다. 같은 것들끼리는 ‘차이’가 없으며 그 거리가 무간격하다. 때문에 구별되지 않으며 낯설지도 않다. 이는 위험한 안전이다. 자기소외나 자기침식에 이르는.
   ‘세계화’는 모든 것은 같은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세계화’라는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테러리즘이 발생한다. 하지만 ‘테러리즘’이라는 타자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다. 대화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병철은 ‘같은 것’을 만드는 다른 예로 ‘진정성 추구’를 언급한다. ‘진정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교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때문에 현대인의 진정성 추구는 곧 자기 관계를 나르시시즘에 그치게 한다. “타자에 대한 사랑을 배제”한 채 자기 거울만 보는 것이다. 결국 자아는 “면도날을 들거나 스마트폰을 쥔다.” 또 다른 테러다.
    타자는 어떻게 ‘낯섦’을 ‘감염’시키는가? 한병철이 언급한 ‘예술’을 예로 들어보자. 시인은 ‘이름 없음’의 위치에서 자신을 망각하고, 타자의 이름으로 발언한다. 나와 멀어지며, 나를 낯설어한다. 이 섬뜩한 자기초월 과정을 통해 “경이로운 다름”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타자는 어디서 오는가? 한병철은 ‘시선’과 ‘음성’이라고 답한다. 판옵티콘 수감자들은 시선으로 인해 자유를 억압받는다. 자신이 언제나 감시(시선)받고 있다는 두려움에 기초하여 행동하기 때문이다. 음성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런 음성은 그 기표만으로 우리를 두렵게 한다. 이 자체가 비밀이고 수수께끼고 시다. 하지만 오늘날 음성은 의미전달을 위한 자음에 불과하며, 디지털 판옵티콘에는 시선이 없다. 우리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니 자유롭다고 느끼며 자기 노출을 서슴지 않는다. 디지털 판옵티콘이 (시선도 없이) 우리 내부까지 탐색하는 지도 모르고 말이다.
    오늘날의 네트워크는 “모든 다름, 모든 낯섦이 제거된 공명 공간”이다. 그곳에선 메아리만 반복되며, 이는 곧 소음이다.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언어에 경청할 수 없다. 파울 첼란의 시 「언어 창살(Sprachgitter)」에는 ‘두 개의 입안 가득한 침묵들’이 나온다. 여기서 ‘침묵’은 언어다. 침묵하는 타자를 향해 귀를 기울이면 타자는 이내 말을 시작한다. 때문에 이 침묵은 경청과 연결되는 언어인 것이다. 하지만 소음은 언어가 아니다.
    한병철은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고립적이고 개별적인 자기 시간이 아니라, 타자의 시간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더 이상 메아리를 외치지 말고, 침묵을 향해 경청해야 한다. 타자가 먼저 공명할 수 있도록, 타자의 ‘음성’을 환대하는 자세로 말이다. 경계 없는 소음은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 하지만 언어 창살 앞에서 ‘나’는 고독하지 않다. 언어 창살 너머에는 ‘너’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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