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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앞의 개인, 날개 꺾인 기술
‘FM방식’을 둘러싼 소유권 논쟁
[199호] 2017년 04월 10일 (월) 김 석 환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 출처 : pixabay.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가로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과학자가 재판정에 피고로 서 있다. 검사가 연구 과정을 의심하는 질문을 하니 과학자는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하며 슬쩍 넘어간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연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과학은 객관적인 검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조작하거나 발뺌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술은 다르다. 특히 돈이 되는 기술이라면 다르고, 게다가 사회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이 그 기술을 탐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의 1900년대 초반은 라디오의 개발이 한창이던 때로 많은 에디슨을 비롯한 많은 발명가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대기업들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때이기도 했다. 1913년 암스트롱이라는 발명가는 라디오 수신기의 감도를 현저히 향상시키는 되먹임 회로(feedback circuit)를 발명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자 대기업인 AT&T가 법적인 공격을 해 왔다.
   AT&T의 주장은 자기 회사의 연구소에서 암스트롱보다 먼저 되먹임 회로를 구상했다는 것이었다. 14년 동안 이어진 법정 투쟁의 결과는 막강한 사회적 위치를 이용한 AT&T의 승리였다. 지금은 이 재판 결과가 명백히 잘못된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되먹임 회로의 사용 권리는 AT&T가 가지게 되었다.
   암스트롱은 재판에 지고 권리를 뺐기긴 했지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여 ‘슈퍼헤테로다인’이라고 하는 획기적인 발명을 하고 이어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 변조 (FM)라는 새로운 라디오 방식을 발명했다. 주파수 변조 방식은 이전에 사용하던 진폭 변조 (AM) 방식에 비해 음질이 선명하고 다른 전파의 방해를 덜 받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암스트롱은 FM 방식의 특허를 대기업인 RCA에 팔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RCA는 이미 AM 방식에 많은 투자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AM 방식의 라디오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암스트롱은 중소기업들과 계약하여 시험 방송을 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험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FM 방송의 음질이 AM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FM 라디오를 선택하게 되었다.
   FM 방송을 듣는 사람이 늘어나자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는 44 ~ 50 MHz의 주파수 대역을 FM 라디오용으로 할당했다. 그 이후 FM 라디오 방송을 하는 회사도 더 늘어나고 FM 라디오 수신기의 판매도 빠르게 늘어나면서 FM 방송의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FM 방식을 거절했던 RCA는 FM 라디오 사업의 급격한 발전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공격을 준비한다. 방송의 품질로는 FM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RCA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정부를 상대로 FM 라디오에 할당한 주파수 대역이 지구의 전리층을 교란시킨다는 내용의 로비를 한 것이다.
   주파수 대역이 전리층을 교란시킨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로비는 성공했고 결국 1945년 연방통신위원회는 FM 라디오의 주파수 대역을 88 ~ 108 MHz 대역으로 변경했다.
주파수 대역을 바꾼 것은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당시 FM 라디오 관련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들에게는 치명타였다.
   우선 FM으로 방송하던 회사는 모든 장비를 새로운 주파수에 맞는 것으로 바꿔야 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FM 라디오 수신기들이 한 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FM 방송사는 모든 청취자를 한 번에 잃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FM 라디오 방송국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중소 라디오 방송사와 라디오 제조업체가 망해가는 동안 RCA는 새로운 주파수 대역의 FM 수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암스트롱은 RCA가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소송을 걸었고 또 한 차례 법정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재판은 대기업인 RCA의 승리로 끝났다. 암스트롱은 되먹임 회로, 슈퍼헤테로다인 방식, FM 방식 등 라디오 기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발명을 3 가지나 했지만 대기업들의 공격으로 결국 파산하게 되었다. 1954년 1월 31일 암스트롱은 정장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13층에서 뛰어내렸다.
   개인이 거대 기업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 자금의 조달도 쉽지 않고 장비도 열악하고 인력의 수급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기술의 경쟁이 아니라 거대한 힘에 눌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그는 날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나라를 ‘헬미국’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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