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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리뷰 -공존 지향하는 한반도 민족주의에 대한 구상
류길재, <통합과 선린을 위한 21세기 민족주의의 모색>, <국제평화>(제3권 2호), 서울평화상문화재단, 2006.
[141호] 2007년 05월 07일 (월) 이종겸 북한학과 석사과정

최근 한반도에 2.13합의의 이행문제를 둘러싸고 묘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 같았던 각국들의 약속 이행은 그 첫걸음인 B.D.A(방코델타아시아)문제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B.D.A문제를 단순히 ‘기술적 문제’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모색, 더 나아가서 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은 그 험난한 노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 험난함 외에도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좌표와 나침반을 가지고 노정에 임할 것인가’하는 점이다. 즉, 궁극적인 목표는 보이나 이념, 정체성 등의 차원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평화체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 논문은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정체성과 이념 차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반도 민족주의라는 화두 그 자체가 여러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기서는 일단 한반도 민족주의를 하나의 현존하는 ‘실체’로서, 혹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로서 논지를 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논문은 한반도 민족주의 궤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남북한 전체에 적용되는 민족주의의 흐름을 파악하여 “한반도 공존 또는 통합에 기여하면서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한반도 민족주의의 내용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선 이 글은 남북한 관계의 역사적 과정을 짚어보며 한반도 민족주의의 특성을 도출한다. 우리 민족에게 ‘민족’은 외세의 침탈에 저항하는 수동적 개념으로 등장하였다. 외세의 침탈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과는 구분되는 ‘우리’의 개념이 탄생하였고, 그 개념에 입각해서 민족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민족주의는 열강의 민족주의적 표현인 제국주의적 침탈에 대한 반사적(反射的)인 성격을 갖는다.

해방 전·후 시기 한반도 민족주의는 분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일제시기 좌파와 우파 각 세력들의 역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고, 해방 이후 이러한 분열적 민족주의 전통은 더욱 격화되었고, 미국과 소련의 개입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고질적으로 만들었다.

대강 이와 같은 역사적 논의 속에서 저자는 한반도 민족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도출한다. 첫째, 저항적 민족주의의 성격으로 출발했지만 전반적으로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기조를 갖고 있다. 둘째, 민족주의가 남북한 각각의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셋째, 남북한은 각각 상대방에 대해 자신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내세우며 경쟁하려고 했다. 이 특징들은 일종의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면서 분단 극복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극복하고 미래와 통합을 위한 실천적 민족주의의 개념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민족주의는 민주주의를 함의해야 한다. 린쓰(Juan Lints)와 스테판(Alfred Stepan)은 서구의 역사에서 국가건설이 민족건설보다 선행되었고, 국가가 국가민족(state union)을 건설하고, 이어서 민주화와의 진전과 함께 민족을 만들어 나갔다고 보았다. 하지만 결국 이들과 하버마스(Jurgen Habermas)에게 결국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다.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버마스는 한반도가 분단이라고 하는 불행한 현상을 민주적으로 타파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국민들이 자유시민으로서, 스스로 법률을 만들고 주권을 행사해 가는 민주시민로서의 기반을 확보한 민족 개념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최장집과 박호성과 같은 한국인 학자들에게 민족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다. 최장집은 “민족주의의 토양 위에서 체제의 성격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실현하는 사회로 발전시키는 일이 부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박호성은 “통일은 민주적 변혁을 가리킨다. 분단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역시 민족주의는 당위이자, 민족통일이라는 당면목표를 위한 외면할 수 없는 이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류길재 교수는 “핵심은 통합이고 민주주의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통합은 종족의 통합이라는 의미에서 머문다면 초기 한반도 민족주의의 아(我)와 비아(非我)를 구분하는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한 종족성에 기반 한 통합을 위한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 보다는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한반도 민족주의는 남북한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공동체적 삶 중 어느 하나라도 한민족과 함께 영위하는 사람들이라면” 시민적 자유를 보장받는 열린 담론이며, 그것은 국가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인 프로젝트로서 (민주주의를 함의한) 한반도 민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류길재 교수는 세 가지 전제(자신의 독자적 정통성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주변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도와줘야 한다, 남한은 한반도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와 남한의 전략들(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 남한의 지속적 경제발전과 남·북한 경제협력, 개방적인 민족주의, 공존적 대북정책, 국제사회와의 협력연계)을 제시한다. 하지만 논문에서의 표현대로 “남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지면상 세부적으로 논하긴 어렵지만, 이 전제들과 전략들 역시 하나하나가 가시적인 과제들은 아니다.

이 논문의 핵심적인 논지 속에서 아쉬운 점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논리적, 실재적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이념적 측면에서 어떠한 친화성을 가질 수 있는지, 더욱이 서구와 상이한 역사를 가진 한반도의 민족주의가 어떠한 동력으로 민주주의를 함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들은 해소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논문은 앞서 지적했듯이 이념과 정체성의 측면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논점을 제공해 준다. 한편에선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그 부정적 측면과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민족주의는 이미 한국인들의 심성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실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족주의를 민주주의 추구와 같은 미래의 전망 속에서 함께 담지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할 때, 한반도의 평화확립과 통일도 정당성과 당위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장대한 구상들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해 본다.

이종겸 (북한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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